‘구경이’ 이영애·‘지리산’ 전지현·‘해피니스’ 한효주...달라진 언니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허니제이가 모니카와 맞대결을 할 때 외친 이 말은 금세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이 말에 담긴 무엇이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허니제이는 그 말이 맏언니들이 맞붙는 것에 고개 숙인 후배들에게 ‘대결도 멋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한 말이라고 전한 바 있다. 여성들도 싸울 수 있고, 또 그것이 멋질 수도 있다는 것. 이러니 대중들 입에 또 마음에 착착 붙을 수밖에.

이 말은 지금 드라마 속 언니들에게서도 느껴진다. 한 때 멜로와 예쁨의 대명사로 불리며, 산소 같고 섹시하며 상큼함으로만 소비되곤 했던 여성들이 산발을 하고 산 속을 뛰어다니며 늘어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격투를 벌이는 언니들로 돌아와서다. 그 주인공들은 JTBC <구경이>의 이영애, tvN <지리산>의 전지현, 그리고 tvN <해피니스>의 한효주다.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 허니제이처럼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잘 봐! 언니들 액션이다!”

<구경이> 속 이영애의 연기변신은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두문불출하며 술과 게임에 빠져 지내는 구경이 캐릭터는 과거 형사물에서 남자들이 주로 했던 역할을 재해석했다. 영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과거의 상처(주로 배우자와의 관계 때문)로 술에 빠져 지내는 전직 형사. 구경이는 그러나 사건을 의뢰받고 세상 밖으로 나와 놀라운 추리력과 근성으로 살인범 케이(김혜준)와 두뇌 싸움은 물론이고 맨몸 격투까지 벌인다.

과거 <대장금>이나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봤던 우아함이나, 광고 속에 등장하던 ‘산소 같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이영애는 대놓고 산산이 부숴버린다. 떡 진 머리와 마치 엘릭서나 되는 듯 마셔대는 술. 이 연기변신은 물론 남녀 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후 세상의 폭력(주로 여성혐오가 대부분이다)을 구경이와 게이의 대결구도를 통해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는 드라마의 새로운 여성서사를 통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를 수용한 이영애의 선택은 그 자체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게 부여된 이미지를 찢어발기며 통쾌함을 느끼고 있을 테니.

<지리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일찍이 몸을 쓰는 연기를 잘 수용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엽기적인 그녀>와 섹시함이 강조됐던 광고로 주목을 받았던 그였고 또 <별에서 온 그대>에서 멜로로 글로벌 스타가 된 그지만, 그는 <블러드>, <도둑들>, <푸른바다의 전설>, <킹덤: 아신전> 등 다양한 액션을 시도해 왔던 배우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그가 맡은 서이강은 지리산 국립공원 최고의 레인저로서 뇌사상태에 빠진 채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떠도는 강현조(주지훈)와 공조해 산 속에서 사고로 위장된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물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 위협하는 산불 현장 속에서 그 불길 사이를 뚫고 뛰어내려와, 고립된 아이들을 온몸을 던져 구해내는 서이강은 액션 히어로의 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이처럼 최근 드라마에서 달라진 여성 서사와 캐릭터의 면면은 <해피니스>의 한효주에게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10여 년 전만 해도 KBS <찬란한 유산>이나 MBC <동이> 같은 작품에서 멜로의 수동적인 대상으로 연기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해피니스>의 한효주는 그 과거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던 그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금세 광인병(좀비나 마찬가지다)으로 변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가는 걸 서슴지 않고 동료를 구해내기 위해 병자들(?)이 우글우글한 컨테이너 속으로 몸으로 던지기도 한다. 코호트 격리된 아파트에서 광인병에 걸려 물어뜯고 피를 빨려는 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윤새봄이 그가 입은 새로운 역할이다. 의상이랄 게 따로 없어 보이는 듯 늘 늘어진 트레이닝복을 아무렇게나 입고 활보하는 그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먹으며 좀비 세상에서도 낙천적인 풍모를 드러내는 인물. 멜로가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그 주도권 역시 그가 쥐고 있을 정도로 털털한 매력을 한껏 뽐내는 인물이다.

이영애, 전지현, 한효주. 한 때 멜로의 대상으로 주로 대중들의 뇌리에 박혀 있던 여성들이 ‘액션 하는 언니들’로 돌아왔다. 그간의 모습과의 대비 때문인지 그들이 보여주는 꾸미지 않은 세상 털털한 모습들과 통쾌함마저 느껴지는 액션들은 그래서 더더욱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중이다. 그들이 깨고 있는 그 여성 여성한 이미지들이 주던 갑갑함과 왜곡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일상에서 느껴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런 이미지의 감옥에 갇혀 있느냐며 이들은 말하고 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tvN,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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