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 큰 ‘지리산’, 로맨스 성공한 ‘해피니스’, 컬트적 반응 ‘구경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각기 다른 날짜에 시작했던 세 편의 주말 드라마가 지난주에 모두 끝이 났다. 그 중 <지리산>은 16부작이었고 <해피니스>와 <구경이>는 12부작이었는데, 가장 빨리 끝났어야 할 <구경이>가 한주 결방하는 통에 세 드라마의 종방 주가 겹쳐졌다. 이들은 모두 장르 성향이 강한 작품들로, 여기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은 tvN <지리산>이다. 지리산 레인저들이 나오는 추리물인 이 작품은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시그널>과 여러 모로 겹치는 구석이 있다. 초자연현상을 다루고, 두 개의 시간선을 오가며 강인한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하지만 <시그널>에서는 성공했던 이 재료들이 <지리산>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강인한 여자주인공은 잠시 미루어두고 초자연현상과 두 개의 시간선을 검토해보자. <시그널>에서 이 두 개의 소재는 필수적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설정의 기본 구조가 허물어져 버린다. 하지만 <지리산>에서도 그런가?

초자연현상 이야기를 하자. <지리산>의 가장 큰 설정은 남자주인공인 강현조(주지훈)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떠돌며 어떻게든 선배 레인저인 서이강(전지현)과 접촉해서 사람들을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두 개의 시간선이 오가는 이 설정에서 생령이라는 설정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지리산에서 몇 년 동안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미션인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시청자들은 이 미션이 꼭 생령의 도움을 받아야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초자연현상이 꼭 필요하지 않으면 넣지 않는 게 낫다. 무엇보다 <지리산>의 생령은 설득력이 심하게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 설정과 규칙이 도입되는데 그러는 동안 설정은 더 인위적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미 이 드라마에는 생령보다 훨씬 잘 먹히는 장르 도구가 있었다. 후반 시간대에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서이강과 새로 들어온 레인저인 이다원(고민시)의 안락의자 탐정 콤비 플레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순전히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이다원을 중반에 죽여버리면서 그 기회를 날려버린다. <비밀의 숲> 때도 했던 이야기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가 더 재미있고, <지리산>의 후반 전개는 이 죽음으로 얻은 게 별로 없다. (그건 <비밀의 숲>도 마찬가지다.)

시간선 이야기. <지리산>은 두 개의 시간선을 오가며 전개된다. 과거 시간대에서 서이강과 강현조는 모두 멀쩡하고 레인저 멤버들의 구성이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과거 시간대는 레터박스가 들어간 와이드스크린으로 그려진다.

가변화면비가 들어갔다는 건 제작진도 이 구조의 핸디캡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두 시간대 사이에 30년의 간격이 있는 <시그널>과는 달리 <지리산>의 시간대의 격차는 기껏해야 몇 년이다. 두 주인공 모두에게 큰 일이 일어났긴 했지만 그걸 빼고 보면 그림 자체엔 별 차이가 없다.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같고 벌어지는 일도 비슷하고 두 주인공의 임무도 같아서 방심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섞여버린다.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시간대를 오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사라져버린다. 과거 시간대에서 사건을 해결하거나 현재시간대에 집중하며 과거는 화상으로 짧게 넣는 게 나았을 것이다.

캐릭터 이야기. 이 드라마엔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많다. 16부작 미니시리즈는 영화보다 훨씬 많은 인물들을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두 개의 시간선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캐릭터가 움직이며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 전지현은 언제나처럼 스타성을 발산하고 있지만 캐릭터 서이강에겐 보폭이 제한되어 있다.

무엇보다 지리산 인근 주민 대부분이 용의자이고 희생자인 이 상황에서는 모든 관심이 흩어져버린다. “범인은 너다!”라는 대사로 끝나는 15회의 결말이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지목된 인물에 대해 어떤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오프닝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캐릭터를 중간에 죽일 자신감이 있다면 그러는 대신 같은 비중의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게 낫다.

문제점은 계속 이어질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로 수렴된다. 작가는 자신의 이전 성공작의 공식을 지나치게 믿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한 이야기에서 공식과 재료는 부차적이다. 다시 말해 <시그널>이 성공한 건 고루할 정도로 뻔한 시간여행 공식 때문은 아니었다. <지리산>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되는 재료들은 <시그널>이 가졌던 플러스 알파를 창출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tvN <해피니스>는 좀비물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좀비물의 어휘를 빌린 뱀파이어물이다. 코로나 사태가 그럭저럭 종결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는 광인병이라는 전염병이 도는데, 이 병에 걸리면 종종 발작상태가 되어 주변 사람들의 목을 물어뜯고 피를 마시며 병원균을 전파한다.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부부로 위장한 두 경찰 주인공 윤새봄(한효주)과 정이현(박형식)은 이웃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에 격리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설정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확진자가 나왔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출근하거나 등교했을 낮에 아파트를 봉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곧 사람들을 물어뜯는 괴물이 될 수도 있는 환자들과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을 같은 곳에 가두는 게 과연 이치에 맞는가. 그들 중 한 명이 백신을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한 항체를 갖고 있다면 왜 당장 연구실로 데려오지 않는가. 각본은 이 중 몇몇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려하지만 끝까지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같은 상황을 만드는 더 좋은 시도가 불가능했던 것 같지도 않다. 이 설정은 많은 부분이 그냥 게으르다.

하지만 <해피니스>에는 요새 지나치게 많아진 좀비물들과 구분되는 장점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인증의 특성이다. 대부분 좀비물에서 좀비는 얼마든지 잔인하게 죽여도 되는 마음 없는 괴물이다. 하지만 광인병에서 ‘남의 피를 빠는 하얀 눈의 괴물’은 일시적인 증상이다. 광인병에 걸린다고 당장 사람으로서 존재를 멈추는 건 아니다. 덕택에 이야기를 푸는 방정식이 훨씬 복잡해졌고 주인공들의 고민도 더 입체적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자기를 물려고 덤볐던 존재가 지금은 여전히 대화가 통하는 이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전히 설정의 논리를 믿을 수는 없지만 그와 별도로 그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사는 구성원들의 묘사는 훌륭하다. 이들이 엄청나게 입체적인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기형적인 집착과 추한 계급의식을 그려내기 위한 다양한 견본으로는 훌륭하다. 정확한 풍자를 위해서는 입체성을 낮추어야 할 필요가 있고 <해피니스>는 그 적정선을 찾아낸다.

이 드라마에서 의외로 성공한 부분은 로맨스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비로맨스 장르물에서 이성애 로맨스는 대부분 결함이다. 캐릭터의 매력을 까먹고 이야기의 호흡을 끊는다. 하지만 <해피니스>는 과하게 들이밀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매력과 동기를 살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건 결코 대충 넘길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세 편의 드라마 중 대중의 호응이 가장 괜찮았던 작품이 <해피니스>였다면 가장 컬트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작품은 <구경이>다. 그와 별도로 이 세 편 중 가장 괴물처럼 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한국판 <킬링 이브>로 여겨졌던 작품이다. 한 동안 리메이크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여자 수사관이 여자 살인자를 쫓는다’라는 문장에서 ‘여자’를 빼보자. 유사성을 따지기엔 지나치게 보편적인 틀만 남는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 <킬링 이브>가 끼친 영향이 없다고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이 틀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의 다양성과 이 드라마가 선택한 이야기의 한국적 특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킬링 이브>가 전문 살인청부업자와 첩보원이 나오는 스파이물이라면, <구경이>는 셜록 홈즈스러운 괴짜 명탐정과 아르센 뤼팽과 같은 천재 범죄자의 대결을 다룬다. 둘 다 19세기 유럽 대중소설에 기반을 둔 초인 주인공이다. 단지 이야기의 구조는 하드보일드 추리물에 가깝다. 성초이 작가 팀은 챈들러를 언급했지만 이야기 구조는 로스 맥도널드 쪽이 더 가까워 보인다. 어느 쪽이건 이는 그렇게 이상한 결합이 아니다. 선입관과는 달리 하드보일드 추리물은 사실주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구경이>만의 또다른 차이점은 이 작품의 정치성과 윤리성에 있다. <킬링 이브>의 빌라넬은 쾌락주의자인 살인마이며 의뢰가 들어오면 희생자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구경이>의 살인마 송이경(김혜준)은 사이코패스지만 철저한 윤리준칙에 따라 행동한다. 악당들은 죽어야 한다. 그 과정을 즐기기도 하지만 이것은 평생을 바쳐야 사명인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도덕적 중심인 보험조사원 구경이(이영애)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송이경이 살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드라마나 시청자나, 송이경이 누굴 죽이건 신경 쓰지 않는다. 송이경의 희생자들 상당수는 타겟 시청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선정된 인물들로, 특히 불법 촬영 범죄와 관련된 중간의 긴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의 정치적 위치를 보여준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거의 거울상과 같은 살인자와 탐정 사이를 오가면서도 은근슬쩍 살인자에게 기운다. 적어도 송이경은 갑갑한 현실세계가 주지 못하는 해답을 제공한다. 단지 현실세계에서도 그 답을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뿐이다.

탐정이 저지해야 할 인물이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인물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서스펜스 구축 방식은 공식에서 조금 어긋난다. <구경이>가 컬트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드라마가 그 어긋난 길을 걷는 동안 한국 드라마 덕후들이 꿈만 꾸었을 뿐 직접 보는 일이 거의 없었던 관계와 긴장감을 잔뜩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퀴어성이다. 이 드라마에는 현재형의 이성애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여자들은 강한 성적 긴장감으로 엮여있다.

무엇보다 <구경이>는 늘 역할의 기대가 제한되어 있던 여자배우들에게 훨씬 넒은 스펙트럼의 연기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연쇄살인마 역의 김혜준이나 조직 두목과 같은 김해숙은 예상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구경이>가 나오기 전에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위생의식 제로인 게임 폐인 명탐정을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얼마나 많은 기회가 우리의 선입견 속에서 사라져갔던 것일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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