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귀신이 곡할 노릇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역사상 한국 콘텐츠가 가장 융성한 요즘, tvN 주말드라마 <지리산>에 대한 기대는 무척 컸다. 넷플릭스 <킹덤>의 김은희,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의 메가히트작을 연출한 이응복, 데뷔 이래 국내 원톱 전지현과 주지훈, 오정세, 성동일 등등 네임벨류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넘어 주식시장을 자극했을 정도다. 특히 스릴러, 장르물로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김은희 작가가 국립공원으로도 익숙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일종의) 오컬트 스릴러물의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렸다. 300억을 투입한 대작이지만 방영 전 이미 해외 판매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1회 방영 직전까지는 축배를 드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시청률은 썩 나쁘지 않았다. 8~10%대를 오가고 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기 시그널이 들어올 정도도 아니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 기대감이 선 반영되었던 관련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고, 혹평은 지리산 계곡의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유는 여럿이나 결국 기대와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과도한 PPL은 소화되지 못한 채 노출됐고, 이응복 감독의 전작 <스위트홈>처럼 어색하거나 과한 연기 지도나 본 이야기보다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는 락, 메탈 스코어, 전개 과정의 세심함 부족 등이 역시나 돌부리처럼 도처에서 눈에 걸렸다. 일일드라마도 아니고 300억대의 자본이 투여된 사전 제작 드라마라고 하기는 옹색한 CG와 배우들의 분장, 장비 등등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지리산이란 광활한 산지를 배경으로 하는 공간감과 리얼리티를 전혀 담지 못한다. 강현조(주지훈)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투명인간인 산신으로 등장하면서 나뭇가지를 옮기는 장면이나 어두운 숲 장면 등에서는 <의천도룡기>와 같은 1990년대 홍콩의 왕정 감독 영화들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만약 작가 이름에 김은희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국내 드라마 작가 중 충성 팬층이 가장 많은 작가이자 그간 별다른 비판을 받아본 적 없는 김은희라는 이름 석 자가 없었다면 <지리산>에 쏟아지는 비판의 강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스릴러를 가미한 장르물에서 특출 난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었던 만큼 지리산이란 영험한 공간에 걸맞은 스케일과 독특한 스토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전지현, 오정세, 주지훈 정도가 이끌어가는 굉장히 한정된 관계와 공간만을 사용하는 작은 이야기면서,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오가고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에 반전 코드를 심어두는 익숙한 김은희표 전개다.

사건이 일어난 2018년과 극중 현재인 2020년을 쉼 없이 오가고, 또 두 주인공의 과거까지 플래시백으로 더해져 캐릭터에 당위와 설명을 입히는 빌드업 과정이 16화 중 7화까지 무척이나 오래도록 이어지지만 캐릭터가 스스로 보여주는 거나 사건이 실타래가 되어 풀어가는 스토리가 아니라 대사와 설정으로 설명하다보니 매력적인 설득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심지어 7회는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게 정답이라는 듯이 산신이 된 강현조가 서이강(전지현)에게 시그널을 보냈던 장면들에 대한 해설을 친절하게 한 번 더 들려준다. 작가의 장점이 캐릭터를 섬세하게 다루는 게 아닌데 연출은 장르적 접근보다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사구조는 두 주인공이 사고를 당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의 전말을 담은 큰 비밀이 있고, 그 과정을 알아가는 와중에 시선을 돌리고 다른 길로 빠지게 만드는 트릭을 통해 비밀의 실체에 다가가는 재미와 관심을 만든다. 허나 큰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시간을 끌면서 호흡만 몇 번 가다듬다가 정작 꺼내놓은 극중 실체적 진실에 극의 절반이 진행될 때까지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줄거리의 몸통을 이루는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미스터리의 무게감은 약한데, 로맨스,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코미디, 국립공원공단 홍보 등 딴 길을 계속해 들락날락하면서 몰입도가 개울 수준으로 얕아진다. 반전도 마찬가지다. 반전을 심어놓았다는 건 알겠는데 손등의 상처나 범인의 집 냉장고에 단서로 줄곧 나온 요구르트가 가득 담겨 있는 걸 바로 보여주며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음을 알려주는 친절한 암시 등은 느린 전개뿐 아니라 장르적 재미를 다분히 줄여놓는다.

무엇보다 지리산이라는 공간, 일상과는 다른 세계라는 은유라는 극중 세계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지리산>이란 세계관에 들어가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미스터리 스릴러에 독특한, 새로운 소재를 하나씩 얹어서 소화하는 걸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이지만, <지리산>은 빈약한 스토리와 얕은 설정,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도한 시간교차와 과한 연출이 불협화음을 내면서 아쉬운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산을 타는 게 직업인 지리산 레인저들이 너무나 뽀송하고 예쁘게 등장하는 것부터 시청자의 기대와 제작진의 좌표가 엇나가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하는 말처럼 뛰어난 사공이 여럿이 모인 탓일까. 극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듯 하지만 지리산과 주연배우들을 담는 화면 연출은 로맨스 드라마의 정서를 갖고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은 바로 이 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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