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극이 된 ‘너를 닮은 사람’, 신현빈·고현정이 아깝다
‘너닮사’ 스토리 부재에 맥락 없는 베드신, 배우들만 생고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우리는 어째서 본래의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갈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어떤 불행으로 이끌까. JTBC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은 아마도 본래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던 드라마였을 게다. ‘너를 닮은 사람’이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그 하나는 자성적 의미로 너를 닮긴 했지만 어느새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의 의미다.

드라마를 끌고 가는 두 사람 희주(고현정)와 해원(신현빈)은 바로 그런 변화를 겪은 인물들이다. 어느 날 독일어 회화 학원에서 해원을 만나게 된 희주는 그에게서 젊었던 시절 가난해도 빛나던 자신을 떠올린다. 해원은 다름 아닌 ‘희주가 변화하기 전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다. 희주 역시 가난했지만, 태림재단 며느리가 되면서 삶이 바뀌었다. 부유해졌지만 자신을 가사도우미 정도로 취급하는 이 집안에서 존재감을 잃어간다. 그가 해원과 금세 가까워지고 그에게 그림을 배우며 친자매 같은 관계를 갖게 되는 건 (과거의 자신을 닮은) 해원을 통해 그 때로 돌아가고픈 욕망이 작용해서였을 게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해원과 결혼을 약속한 남자 우재(김재영)가 등장하면서 깨져버린다. 해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신 그림을 가르쳐주기 위해 온 우재와 희주는 가까워지고, 결국 그들은 선을 넘어버린다. 희주는 남편 현성(최원영) 몰래 아일랜드 유학 중 해원을 떠난 우재와 동거한다. 그렇지만 희주는 모든 걸 버리고 온 우재와는 달리 현성과 그 집 며느리라는 현실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우재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도망친다.

그리고 몇 년 후 해원이 희주 앞에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희주는 과거의 그 가난해도 빛나던 그 사람이 아니다.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은 채 아일랜드의 병원에 있던 우재를 데려온 해원은 희주에 대한 복수심과 더불어, 우재가 혹여나 기억을 되찾아 희주에게 돌아갈까 걱정하며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희주도 해원도 그래서 과거의 본래 건강하고 빛났던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그들은 자신을 닮았지만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됐다.

<너를 닮은 사람>은 이처럼 인물의 내면 깊숙한 심리를 들여다보면 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의 원작이 단편소설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단편소설이 갖는 이러한 괜찮은 설정과 문학적 서사가 드라마에서도 빛을 발하려면 그 설정을 극적인 사건들로 엮어내는 다양한 스토리가 더해져야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설득해내는 연출이 필수적이다. 과연 <너를 닮은 사람>은 이러한 변환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 내면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스토리와 연출로 잡아내지 못하게 되면 그 겉면에 드러나는 것들만 보이게 되는데, <너를 닮은 사람>이 원작과는 달리 치정극으로 보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개의 베드신은(드라마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다) 이 작품이 가진 한계를 잘 드러낸다. 드라마에는 희주와 현성이 그리고 해원과 우재의 베드신이 등장한다. 고현정과 신현빈의 베드신이 등장하는 드라마라는 파격을 보여주지만, 그 장면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는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희주와 현성의 베드신은 그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도 우재를 떠올리는 희주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현성에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우재를 마음 한 구석에서 그리는 그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대체된 욕망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환기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해원과 우재의 베드신은 이미 마음이 떠나버렸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갈망함으로써 그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물론 그런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 즉 이 베드신은 만일 그 안에 인물들이 가진 심리와 욕망들이 제대로 담겨져 전해졌다면 단순한 자극적인 장면 이상의 명장면이 됐을 수도 있었다.

결국 <너를 닮은 사람>은 소설 원작을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보다 극적이고 다양한 스토리 설계를 하지 못했고, 또 이런 감정과 심리변화를 제대로 연출을 통해 표현해내지 못함으로써 다소 뻔한 복수극이자 치정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고현정이나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주목받는 배우가 된 신현빈이 아까운 상황이다. 이런 대본에 연출로는 이들의 호연도 제대로 보여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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