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돌’, 단순한 추억팔이 콘텐츠로는 안 통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1990년대로도 모자란 걸까. 추억의 열차는 2000년대로 넘어갔다. 지난 10일 첫 방송된 tvN <엄마는 아이돌>은 애프터스쿨의 가희, 쥬얼리의 박정아, 원더걸스의 선예 등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활약한 2세대 아이돌 출신 경력단절 육아맘의 귀환 프로젝트다. 1화에서 공개된 세 멤버와 함께 세 멤버가 더 합류해 6인조 엄마 아이돌 그룹의 결성을 목표로 하는 MBC <복면가왕> 출신 민철기 PD의 새 프로그램이다.

‘부캐’를 비롯해 오늘날 방송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콘텐츠와 결이 맞기도 하고, 한때 환호를 받는 무대 위의 스타였으나 지금은 평범한 엄마로 살아가는 전설들을 만나는 반가움, 육아에 밀린 자아실현의 꿈이란 공감대,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점에서 감동을 안길 경단녀의 화려한 부활 등 노리는 포인트가 명확하다. “너무 신기하고 꿈같다.”는 박정아의 인터뷰나, “외모적으로도 그때와 달라졌다”고 말하는 선예의 걱정은 이 프로그램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다.

무대에 오르고 공기는 바뀐다. ‘현실 점검 무대’라는 이름하에 후배 아이돌들을 객석에 앉혀두고 디렉팅을 맡아줄 안무가 배윤정, 프로듀서 김도훈, 보컬 트레이너 박선주, 서용배, 한원종 등의 마스터 앞에서 오랜만에 자신의 끼와 재능을 뽐내는 무대를 펼친다. 무려 11년 11개월 만의 무대에 올랐다는 박정아는 공전의 히트곡 ‘슈퍼스타’를 열창하고, 무대 퍼포먼스를 펼치며 후배 아이돌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유의 아우라와 춤 실력을 과시한 가희나 그동안 연예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선예의 퍼포먼스는 감동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사실, 2000년대를 1990년대처럼 소화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봄과 초여름 SBS <문명특급>의 ‘컴백해도 눈 감아 줄 명곡’, 일명 ‘컴눈명’ 프로젝트와 콘서트가 큰 화제였다. 이 기획 또한, 복고의 반가움과 재기에서 오는 위로 코드의 결합이었다. 가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애프터스쿨이 얼마나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인지 보여준 바 있다.

<엄마는 아이돌>도 비슷하다. 홍진경, 도경완, 이찬원, 우즈와 정덕현 평론가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이 ‘컴백소환단’이라고 해 회의 및 섭외에 나선다. 관련해 호기심을 띄우고, 새롭게 펼쳐질 이벤트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당위와 정서적 공감대, 그리고 실력으로 보여주는 꿈의 무대가 주는 감동까지 일종의 패키지라는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쇼라기보다는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식 음악예능에 가깝다.

그런데 2000년대 시간여행을 하는 건 좋은데, 굳이 프로그램을 그때처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화면 가득 ‘위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무대가 그립지 않으세요?’ 등 명분과 감동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작한다. 출연자가 누구인지 마케팅으로 활용했으면서, 누가 나올지를 예측하고 추측하는 서스펜스를 주요 장치로 서사를 구성한다. 힘찬 무대 진행부터 <복면가왕>이나 <나는 가수다>가 처음 등장하던 시절의 문법과 패턴을 따르고 있다.

주지하고자 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이나 후배 아이돌들로 가득채운 객석 등 무대 구성과 ‘감동의 도가니’까지 과거 버라이어티의 감수성에 가깝다. 게다가 컴백 마스터로 나선 배윤정, 박선주, 김도훈 등도 그때 그 시절의 선생님들이다. 이런 모습들이 과거의 스타를 무대 위로 올리는 데까지는 어색하지 않지만 오늘날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현재성 있는 프로젝트로 어필하는 것은 또 다른 숙제다.

밀레니얼 세대로서 1990년대 바이브를 비롯해 과거 추억 콘텐츠가 반가운 편이다. 그러나 방송 콘텐츠가 계속해 조로하는 경향에는 염려가 있다. 예능의 꽃이었던 주말 프라임타임이 중장년층을 위한 예능 프로그램 편성시간으로 개념이 바뀌고, 새롭고 신선하며 트렌디한 예능을 이끌던 금요일 프로그램들마저도 대상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 <엄마는 아이돌>는 아이돌을 내세우긴 했으나 무대 구성과 감정을 주조하는 서사 방식이 엠넷이 아니라 <놀면 뭐하니?>나 ‘레전드’를 내세운 KBS2 <불후의 명곡>, 중장년 콘텐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TV조선의 음악쇼들과 비슷한 결에 있다.

최근 2~3년 간 트로트붐과 오디션예능의 재유행이 이어지면서 많은 방송에서 데뷔를 목표로, 인생 역전이나 재기의 기회를 내걸고 음악 예능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재능과 매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예전 YG와 JTBC 정도의 몰염치는 아니지만 방송이 좌초하면서 데뷔와 활동을 내건 프로젝트가 공수표로 끝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현재 팬덤을 중심으로 하는 아이돌 산업의 구조 내에서 데뷔나 활동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방송이란 활주로가 끝날 때까지 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비행기와 같다. 과연 복고를 넘어 객석에 가득 채운 아이돌들처럼 세대를 포섭하는 기획이 될 수 있을까. 현재성을 갖추기 위해선 반복되는 정서적 당위를 내세우기보다, 서사와 구성 면에서 보다 담백하고 세련된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어른과 젊은 세대가 흥미를 가지는 어른의 차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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