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옷소매’,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인 변화가 반가운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21년 드라마 하반기는 아무도 예상 못한 사극 중심으로 가고 있다. 스타급 여배우들의 복귀작은 소소한 마니아는 얻었지만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그 시기를 젊은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인 KBS <연모>나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이 차지하고 있다.

두 드라마는 한때 유행했던 퓨전사극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일단 완전한 정통사극까지는 아니지만 정통사극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연모>와 <옷소매> 모두 퓨전사극의 특징인 로맨스 구도를 가져오지만, 왕실의 권력다툼 역시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여주인공들의 주체적인 변화이다.

<연모>의 주인공 이휘(박은빈)는 문무의 실력을 갖춘 왕세자이지만 죽은 오라비를 대신해 왕권을 가져온 인물이다. 사극에서 남장여자는 MBC <선덕여왕>부터 시작해 은근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연모>의 이휘는 단순한 남장여자 캐릭터에 벗어나 조선의 왕이 되기 위해 죽은 쌍둥이 오빠를 연기해야 했던 인물의 서사를 그린다. 이휘는 여성의 삶을 묻어버리고 남자인 왕의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시강원 사서 정지운(로운)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휘의 삶은 복잡해진다.

<연모>는 가상의 인물 이휘의 심적 갈등을 꽤 진지하게 다룬다. 인생을 걸고 개인으로서의 사랑과 왕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은 사극에서 흔치 않았다. 기존의 사극에서 왕은 언제나 존엄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왕을 가상의 남장여자로 설정하면서 오히려 이야기가 풍부해졌다. 이휘는 사랑과 책임 모두를 놓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삶과 인생을 위해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그렇게 여성이었던 왕세자 이휘에 집중한 사극은 기존의 퓨전사극과는 다른 풍성한 왕족의 감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

한편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이세영)은 언뜻 MBC <대장금>의 대장금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지혜롭고, 자비로우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궁궐의 여인을 그려낸다. 다만 성덕임이 대장금과 다른 부분이라면 주체적이고 당당한 성격이다. 대장금은 의지는 강한 주인공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희생하는 수녀님 같은 성격이었다. 반면 <옷소매>의 성덕임은 누구보다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잘 알고 있다. 왕세손 이산(이준호)을 사랑하는 마음도 당당하고, 억울한 일을 참기보다는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끝까지 싸운다.

특히 성덕임이 어린 시절 영조에게 하사받아 아끼던 영빈의 일기책 여범의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덕임은 여범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다. 하지만 그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영조와 대면할 것을 중전 김씨에게 요청한다. 이후 영조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자, 영조 앞에서 당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 억울한 누명을 벗고 빼앗긴 여범조차 되찾는다. 이 장면은 <옷소매>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동시에 성덕임의 당당한 성격을 잘 극화해 드러낸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옷소매>는 기존 정통사극에서 보여줄 법한 왕실 여인들의 뻔한 질투와 시기에 이야기를 낭비하지 않는다. 중전 김씨는 냉철해 보이지만 이지적인 매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 제조상궁 조씨(박지영)는 수백 명의 궁녀를 아우르는 최고의 권력자로 등장한다. <옷소매>에서는 이 인물들의 개성 또한 넘치게 드러난다. 그렇다보니 반란 세력인 제조상궁 조씨가 그리는 궁녀 권력 에피소드 역시 있을 법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 바람에 성덕임과 이산의 잘 쌓아놓은 로맨스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좀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 최근 방영을 시작한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역시 주인공은 아니라도 여성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태종 이방원>은 그간의 이방원보다 좀 더 섬세하고 선비 같은 이방원을 그려낸다. 반면 이방원의 부인 민씨(박진희)나 이성계의 아내 강씨(예지원) 캐릭터는 대범하고 정치적인 지략을 갖춘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기존 대하사극에서 영웅 옆의 안주인 정도로만 그려진 안방마님 캐릭터들과는 그 결이 다른 시작이다.

이처럼 최근 사극은 주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추세다. 이 캐릭터들을 통해 사극에서 활력 있는 서사의 변주가 이뤄지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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