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맨틱 에러’, 어떻게 왓챠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나
BL드라마에 대한 폭발적 반응이 말해주는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 남자들끼리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라고?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는 그 과감한 기획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끈다. 물론 아직까지도 우리네 대중들에게 동성애, 그것도 남성들끼리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 소비되는 콘텐츠 중 하나로 조금씩 부상하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시맨틱 에러>의 밀당 로맨스는 사실 그 스토리구성만으로 보면 익숙하다. 원칙주의자 공대생 추상우(박재찬)와 인싸 장재영(박서함)이 대학 조별과제의 갈등으로 인해 악연이 이어지고, 그 악연이 점점 인연으로 바뀌면서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청춘들의 소소하지만 디테일한 감정들이 오가는 로맨스가 주로 다뤄지는 웹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시맨틱 에러>도 그 스토리가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밀당을 하는 인물들이 잘 생긴 두 남성이라는 점은 이 모든 익숙한 스토리를 낯설게 만든다. 즉 서로를 못 잡아먹어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장재영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꿔 그 짓을 하지 않게 되자, 이제는 추상우가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며 장재영을 찾는 그런 스토리는 우리가 청춘멜로에서 늘 보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남성들이라는 점은 이른바 ‘이성애’ 중심으로 온통 채워져 있는 멜로에 커다란 파열음을 만든다.

주로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를 통해 저변을 넓혀온 이른바 BL(Boy’s Love)로 불리는 장르는 남성 동성애 코드의 로맨스물을 지칭한다. 여기서 굳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코드’라 부르고 또 ‘로맨스물’이 많다는 건, 보다 직접적인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이들만을 위한 하드코어만이(물론 스킨십도 등장하지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마치 사춘기 시절의 첫 사랑의 설렘을 담는 듯한 간지러운 감성들이 오고가는 장르. 그래서 BL은 굳이 동성애의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만 소비하는 장르는 아니다.

BL 장르가 우리에게 좀 더 대중적으로 저변을 넓히게 된 계기 중 ‘아이돌 팬덤 문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게다. 보이 그룹의 팬덤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을 주인공으로 ‘팬픽’을 만들고 이를 공유하며 즐기는 문화 속에서 BL 장르에 대한 저변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 점점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인 시선이 포용적인 관점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적 변화도 BL 장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중요한 이유다.

콘텐츠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동성애는 먼저 영화에서 주로 다뤄졌다. 해외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같은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동성애라는 소재가 주목되었고 국내에서도 <번지점프를 하다>, <왕의 남자>를 비롯해 <쌍화점> 같은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면 지상파를 중심으로 보편적인 시청자를 상대하던 드라마는 훨씬 보수적이었지만, 그래도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작품들이 간혹 주목을 받았다. 남장여자 콘셉트로 등장한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성균관 스캔들>, <바람의 화원> 같은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뒀고, 이 코드는 최근 <구르미 그린 달빛>, <연모> 같은 작품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BL 장르의 드라마는 10대에서 30대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아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새빛남고 학생회>, <나의 별에게> 같은 웹드라마로 제작되어 왔다. 그만큼 마니아 장르로 치부되어 왔던 것. 그런 점에서 보면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어 공개된 <시맨틱 에러>는 그 시도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일부 여성 마니아들이 숨어서 즐기는 장르로 낮게 취급되던 BL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왓챠에서 <시맨틱 에러>는 공개된 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전체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다양성 차원에서도 또 이성애 중심 사회가 가진 편견을 깬다는 의미에서도 <시맨틱 에러>의 성공은 의미가 있다. <시맨틱 에러>의 성공으로 이미 여러 편의 BL드라마들이 제작을 예고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로써 BL장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될 것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관점을 대중들이 받아들이며 요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왓챠]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