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 끔찍한 과학과 빈약한 장르 테크닉, 왜 그랬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2014년에 발표된 최항용의 동명 단편영화이다. 미쟝센 영화제에서 보았을 때 학생영화답지 않은 야심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어쩔 수 없는 제작비의 제한 속에서도 할리우드 SF에서나 기대할 수 있었던 비주얼과 액션을 그럴싸하게 구현해냈으니까. 그렇다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였느냐.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에일리언> 시리즈, 그 중에서도 2편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이야기부터 대단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심지어 이 영화에는 웨일랜드 유타니 회사 로고도 등장한다). 그리고 과학이 정말로 나빴다. 하지만 영화 전체가 감독의 테크닉 과시를 위한 쇼케이스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250억원이라는 원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미니시리즈는 이같은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원작의 문제점들은 긴 러닝타임 안에서 통제되지 못한 채 확대되고 증식된다. 드라마에 나오는 월수처럼.

일단 과학 이야기를 하자. 모든 SF 영화가 과학에 충실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일반적인 액션 영화도 그건 불가능하다.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카 체이스 상당 부분은 왜곡된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SF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적당히 넘어가고 관객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 상대적으로 더 넓다.

<고요의 바다>에도 대충 넘길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주복 헬멧 안의 조명이다. 정상적인 헬멧이라면 헬멧 안쪽이 어두워야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바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관객이나 시청자가 배우들의 얼굴을 구별하는 건 중요하다. 달의 저중력 묘사가 거의 없는 건 아쉬운데 이는 무중력 묘사보다 훨씬 어려워서 할리우드에도 이를 제대로 구현한 작품은 거의 없다. 적어도 실내 묘사에서는. 아마 달에 기지가 생기고 그곳의 일상이 중계되기 전까지는 다들 대충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과학은 그렇게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시작부터 시청자들은 어이가 없는 설정과 마주친다. 전지구가 가뭄을 겪고 있다. 해수면도 내려가 해수담수화도 어렵다. 이건 그냥 말이 안 된다. 수많은 나라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물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지 물의 총량이 줄어든다는 말은 아니다. <고요의 바다>에서는 물이 인간이 한 번 쓰면 사라져버리는 신비한 물질로 여기는 것 같다.

이 어이없는 설정은 더 어이없는 설정과 짝을 이룬다. 달에서 발견된 신비한 월수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은 물과 비슷하지만 바이러스와 비슷한 속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증식한다. 다시 말해 우주에 보존법칙이 있다는 걸 가볍게 무시하는 물질인 것이다. 이런 물질도 SF에 나올 수 있다. 단지 과학자들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인식하고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이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지구의 물을 보충할 기회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이 정도로 설정이 건성이면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고요의 바다>의 거의 모든 설정은 과학적 개연성과 충돌한다. 착륙궤도 따위는 개무시하고 떨어지던 우주선이 기지 근방에 불시착하는 도입부부터 이게 무슨 뻘짓인가 싶다. 정화하겠다며 멀쩡한 공기를 바깥에 버리는 기지의 시스템은 어떤가. 제목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대사도 건성이다. “달에 보이는 저 검은 곳이 ‘고요의 바다’라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 검은 곳 모두가 ‘바다’다. 한국어 사용자의 대사이니 “저 토끼 머리가 ‘고요의 바다’야.” 정도로 수정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과학은 포기하자. 하지만 드라마적인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잠재적인 시체로, 죽기 전까지도 딱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시간 안쪽의 호러물이라면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8부작 미니 시리즈를 이런 인물들로 채우는 건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은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있을지도 모르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의 연속 속에서 구별되지 않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요의 바다>는 장점 없는 드라마가 아니다. 미술과 CG, 기타 시각효과는 만족스럽다. 다시 말해 단편 <고요의 바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감독의 차기작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두나, 김선영 무엇보다 김시아의 연기와 존재감도 만족스럽다. 다시 말해 <고요의 바다>는 좋은 SF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기초 재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끔찍한 과학과 빈약한 장르 테크닉 때문에 이 재료들은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여자 과학자가 달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만난다는 설정만 지킬 수 있다면 나머지는 교체해도 되는 이야기였는데.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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