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환·박준면 같은 배우들에 스며드는 시간(‘뜨거운 씽어즈’)

[엔터미디어=정덕현] JTBC <뜨거운 씽어즈>는 이상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노래 실력으로만 보면 대단하다 말하긴 어려운 평이한 수준들이다. 물론 권인하 같은 가수나 이종혁, 이서환, 이병준, 박준면 같은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 이들은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의 출연자들의 노래는 잘 부르는 ‘노래방 수준’ 정도로 들린다.

물론 배우들이라 그런지 표현력은 남다르다. ‘연세대 박남정’으로도 불리고 박진영과 <스트릿 우먼 파이터> 모니카의 팬이라고 밝힌 우현이 부르는 ‘날 떠나지마’는 예사롭지 않은 댄스 본능까지 더해졌고, 이종혁이 마지막 무대에서 부르는 부활의 ‘Lonely Night’도 마치 콘서트장을 온 듯한 흥을 선사했다.

지난주에 나왔던 서이숙이 부르는 마야의 ‘나를 외치다’는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만들었고, 나문희와 김영옥이 각각 부른 ‘나의 옛날 이야기’와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남다른 몰입감으로 가사를 전달해 듣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역시 배우는 다르다는 걸 입증해준 무대들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노래 실력은 조금 부족해도 무대가 주는 감동이 큰 건 단지 이들이 ‘연기하듯 노래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연기에 이들의 남다른 연기인생이 얹어져서다. 물론 이종혁 같은 배우야 주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여기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모두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들 역할을 했던 이들이다. 이제 나이도 지긋해진 그 연기 인생에 스토리가 없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이정재 친구로 소개된 배우 이서환은 대표적이다. 여기 출연한 다른 배우들조차 그가 누구인지 잘 못 알아볼 정도로 작은 역할이나 지나치는 역할을 연기해왔던 배우. 하지만 작품마다 그 얼굴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건 그가 얼마나 작품 속 인물에 몰입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로 데뷔한 그는 결혼 후 아이까지 생기면서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고 했다. 그래서 뭐든 알바를 하려 했는데 아내가 “돈을 벌어올 거면 연관된 일을 하라”고 해 작은 단역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 그는 “적어도 지금 와서는 밥벌이를 하고 있다”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오십이 돼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연기인생이 그가 무대에서 부르는 정인의 ‘오르막길’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 노래를 들은 김문정 음악감독이 “고생하셨습니다”라며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막길을 오르셨던 게 오롯이 느껴졌다”는 말에 이서환의 눈시울을 붉어졌다. 무심한 듯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던 얼굴이 누군가 그 삶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순간 슬쩍 감정을 드러내는 광경. 이 무대가 어떤 대단한 가수들의 그것보다 색다른 감흥을 주는 이유였다.

이런 감흥은 등장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기며 무대에 오른 배우 박준면의 무대에서도 느껴졌다. 과거 영화 <하모니>에서 나문희와 함께 출연했던 박준면은 재즈와 브루스를 좋아해 앨범까지 냈던 배우였다. 결국 앨범은 망했지만 그 앨범 때문에 인터뷰를 했던 기자와 결혼했다는 특이한 이력의 배우. 그가 부르는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특유의 재즈 감성이 더해져 그 가사가 달리 들렸다.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온전히 그 가사의 감성이 전달된 건 남다른 연기인생을 살아온 배우의 삶이 더해져서였다.

여기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제안을 받고도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 하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흔히들 한 작품의 성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에 의해 이뤄진 것처럼 이야기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단역과 조역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연기의 ‘하모니’가 만들어진다는 것. <뜨거운 씽어즈>가 조연 역할을 많이 한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은 뜻이 여기에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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