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시지프스’, JTBC 드라마 연초 성공사 이어갈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드라마에는 2017년 2월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부터 시작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매해 연초엔 엄청난 대박 드라마의 기운이 밀려오지만, 그 후 연말까지는 그 정도의 화제성이 있는 흥행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2월 시작한 <미스티>와 후속작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그리고 2019년 1월과 2월에는 1.7%의 시청률에서 시작한 23.8%의 당시 종편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한 <SKY 캐슬>이 있었다.
2020년도 비슷했다. 1월부터 3월까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까지 흥행 기운이 쏠린 <이태원 클라쓰>와 종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부부의 세계>까지 막강한 대박 드라마 기운이 몰아쳤다. 그래서일까? 이후 일주일 내내 편성된 JTBC 드라마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모범형사> 정도가 다음 시즌을 기대할 만할 정도의 잔잔한 흥미를 끌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2021년 JTBC 드라마의 기상도는 어떠할까? 일단 지난 연말부터 정초까지 보는 내내 가슴 답답하게 만들었던 <허쉬>의 먹구름은 사라졌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는 월화에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수목에 <시지프스 더 미쓰> 그리고 금토에 편성된 <괴물>이다. 이 중 종영이 임박한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대박의 기운에서 제외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처럼 연애 못하는 남녀가 조금씩 다가서는 사랑스러운 현실감도 없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줬던 느슨하지만 행복한 여운도 없다. 그냥 일일드라마식 플롯을 느슨하게 ‘있는 척’ 힘 뺐을 따름이다.
반면 <시지프스>와 <괴물>은 인상적이다. 이중에서 <괴물>은 봉준호와 박찬욱의 영화가 드라마로 변주된다면 이런 느낌이겠다 싶은 지점들이 존재한다. 뭔가 섬뜩한 시골의 기운이 담긴 만양읍을 배경으로 한 이 스릴러는 영상이나 분위기만으로 제대로 압박감을 준다. 평범한 드라마와는 다른 이질적인 OST까지 <괴물>에 스멀스멀 스며든다. 여기에 주인공 이동식(신하균)과 한주원(여진구)을 포함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경찰들의 분위까지 숨이 막힌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는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JTBC 금토드라마 전작 <허쉬>처럼 지루한 것보다는 낫다.
다만 <괴물>은 일반적인 드라마의 정박 호흡과 달리 느리게 숨 쉬었다가 어느 순간 또 빨라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당연히 이 특유의 분위기로 개성은 인정받아도 시청률이 크게 치고 올라가지는 못할 것 같다.
오히려 2021년 JTBC 드라마의 연초 흥행작은 SF드라마를 표방한 <시지프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시지프스>는 여러 면에서 JTBC 드라마의 대히트작 <이태원 클라쓰>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이태원 클라쓰> 역시 이태원도 클라쓰도 느껴지지 않는 통속극이지만, 뭔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었다.
<시지프스> 역시 설정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SF적 완성도는 의심스럽고, 대신 진입장벽은 낮기에 시간은 잘 간다. 그냥 주인공 배우 조승우와 박신혜가 장난감 같은 총을 쏘며 우레 같은 총알 한 발 안 맞고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개연성은 포기하고 이 미친 전개를 게임처럼 즐기는 순간이 온다. 여기에 유년의 추억 담긴 <벡터맨> 류의 기시감 주는 어수룩한 CG까지 익숙해지면 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멸망 이후 명동에 있던 방탄소년단 포스터보다 더 존재감 있는 총탄 막는 방탄냉장고까지 등장하노라면 이건 좀 심하잖아, 싶지만. 하여간 JTBC <시지프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은 이제 욕하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SF드라마라는 신기한 불량식품을 얻은 셈이다. 물론 <시지프스가> JTBC 10주년 기념이란 타이틀을 붙일 만한 드라마인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래도 <시지프스>에서 주인공 한태술로 분한 조승우의 어수룩한 천재 CEO 연기는 인정할 법하다. 누가 순간순간 스티브잡스와 맥가이버에서 너드 공대생으로 변하는 캐릭터를 물 흐르듯 흘러가게 할 수 있는가. tvN <알함브라의 궁전>을 거쳐 온 박신혜도 주인공 강서해를 통해 판타지적 성격의 드라마를 살려내며 액션연기와 감정연기의 양쪽 줄타기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부족한 개연성과 어색한 CG를 두 주인공들의 연기로 채워가며 달리는 셈이다.
결국 <괴물>이나 <시지프스> 모두 과거 JTBC의 흥행작만큼의 성과는 올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통속극을 세련 되게 가공해 연초에 흥행한 JTBC에서 <괴물>이나 <시지프스>를 통해 예전과는 다르게 1,2,3월을 시작한 건 의미 있어 보인다. 신선한 도전인 동시에 무엇보다 2020년 <부부의 세계> 이후 수많은 실패작들에 비하면 그래도 눈여겨 볼 강점들은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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