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연극과 닮은 ‘괴물’, 흥미로운 스릴러인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괴물>이 괴이한 드라마인 것은 틀림없다. <괴물>은 모두에게 친절하거나 환영받을 성질의 드라마는 아니다. 아마도 <괴물>의 시청자는 초반의 몇 회를 보고 스킵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스릴감을 느끼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괴물>의 스릴감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적인 특수효과나 속도감 넘치는 전개의 쾌감이 아니다. <괴물>은 영화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연극과 더 닮았다. 가상의 도시 문주시 만양읍은 하나의 소극장 역할을 한다. 어두침침한 화면은 소극장처럼 어둡고 배우들의 얼굴은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클로즈업되어 확대된다. 2막의 연극처럼 드라마 역시 1막과 2막처럼 미묘하게 단절된 부분이 있다. 1막에서는 구멍가게 사장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강민아) 실종사건을 통해 만양의 연쇄살인범을 찾는다. 2막에서는 이동식의 여동생을 죽은 의문의 살인자를 찾는다.

한편 <괴물>은 연쇄살인을 다룬다고 해서 익숙한 형사물처럼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괴물>은 만양이라는 무대 위에 의심스러운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을 차례차례 등장시킨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주인공 이동식(신하균)과 한주원(여진구)은 물론이거니와 동료 경찰 박정제(최대훈)나 만양 파출소장 남상배(천호진)까지 모두 용의자처럼 느껴진다. 파출소의 경찰들만이 아니라 구멍가게 사장 강진묵(이규회)이나 문주 드림타운 개발 위원장 이창진(허성태)까지 모두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이 인물들이 주고받는 알 듯 모를 듯한 대화와 표정에서 소극장의 관객이 된 시청자들은 찾아내야 한다. 물론 누가 범인인가, 아닌가 하는 단순히 추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 신하균을 비롯해 천호진, 이창진, 최대훈, 이규회 등은 클로즈업된 얼굴로 범인찾기이상의 것들을 전달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진심을 숨기는 자의 고통, 비밀을 숨기는 자의 위장술까지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간다. 이 베테랑 배우들은 소극장의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강렬한 표정이나 은밀한 몸동작으로 이 숨겨진 사연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배우들을 통해 그 감정을 찾아내고, 그것이 <괴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어떤 맥락으로 이어지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이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괴물>에서의 괴물은 연쇄살인범이었던 강진묵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권에 눈이 멀어 능구렁이처럼 살아가는 이창진도 괴물이다. 아들 정제를 위해서 아니 그보다는 성공의 욕망을 채우려 괴물이 된 엄마 도해원(길해연)도 있다.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서는 가족은 물론 살인까지도 지워버리려는 경찰청창 후보 한기환(최진호) 역시 승자독식 시대가 낳은 괴물이다.

하지만 악역만이 괴물은 아니다. 주인공 이동식과 한주원 역시 그들이 겪은 상처들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 수 없던 괴물이었다. <괴물>은 극 초반 두 인물을 사이코패스 느낌의 괴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극 중반을 넘어서면서 두 인물이 트라우마의 고통 때문에 괴물처럼 살 수밖에 없었으며, 살인사건의 수사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트라우마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으르렁대던 이들은 극 후반에 이르면 서로 주고받는 눈빛과 미소, 툭툭 던지는 대사만으로 상처 입은 영혼끼리의 소통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괴물>은 인물을 담아낸 장면 하나하나를 멋진 그림처럼 선사하기도 한다. 이야기 자체는 끔찍하고 비참하지만, 그러면서도 미학적인 영상의 아름다움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피 칠갑과 폭력이 난무하는 평범한 형사물과는 다른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괴물>은 아쉽게도 흥행성이 강한 작품도 아니고 당연히 최고의 시청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연극적인 장치를 도입, 재미를 주는 동시에 드라마가 뽑아낼 수 있는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최대한 뽑아낸 수작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또한 어마어마한 물량공세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을 비롯해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재밌는 장면들을 심하다 싶을 만치 뒤섞어놓고도 결과적으로 허술해서 시시했던 같은 방송사의 <시지프스>와도 많이 비교가 된다. 굳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장난감총 같은 무기로 빵빵 쏘며 황당한 핵전쟁을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 가상의 시골 만양읍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밀도 있게 다루는 것만으로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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