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가 복원한 일본 관동 대지진, 스케일보다 진심이 더 놀랍다

[엔터미디어=정덕현] 1923년 요코하마.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그 시공간을 가져온 건 고한수(이민호)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지만, 또한 당대에 벌어졌던 관동 대지진의 참상을 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한수와 그의 아버지(정웅인)가 함께 걷는 장면을 통해 요코하마의 활기 넘치는 거리를 보여주고 시내 전체를 조망하는 스펙터클한 광경도 보여준다. 결국 이 활기 넘치던 도시가 하루아침에 대지진에 의해 지옥도로 변하는 걸 담아내기 위한 전제로서 보여주는 스펙터클이다.

부산 영도에서 선자(김민하)를 만나 아이까지 갖게 한 한수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고 일본에서 큰돈을 벌어 그곳까지 왔던 인물이다. 결국 기혼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선자에게 아이까지 갖게 한 한수는 결코 선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파친코>는 그가 어떤 역사적 질곡 속에서 그런 인물이 되었는가를 그려내면서, 그 계기로서 관동 대지진을 통해 겪게 된 비극을 제시한다.

제주도민이었지만 요코하마로 건너가 가난해도 꿈을 갖고 살았던 한수와 한수 아버지. 셈이 빨랐던 한수 아버지는 야쿠자 아래에서 갖은 굴욕을 참아내며 인정받고 살고 있었는데, 사랑에 눈이 멀어 돈을 횡령하게 되고 결국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고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살아남은 한수는 야쿠자 두목과 함께 여진이 계속되며 지옥도로 변해가는 도시를 빠져나간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건 이 관동 대지진의 참극 속에서 이 드라마가 당대에 벌어졌던 조선인 학살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지진으로 조선인 죄인들이 탈옥했고, 그들이 약탈을 일삼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심지어 물에 독약을 탔다는 얘기까지 떠돈다. 결국 자경단이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로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흥미로운 건 이 역사적 사실인 관동 대지진 속 조선인 학살을 <파친코>가 가감 없이 담아내면서 위험에 처한 한수를 야쿠자 두목이 도와주는 대목이다. 자경단들의 끔찍한 만행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같은 인간으로서 한수나 조선인들을 숨겨주는 일본인들도 담고 있다는 것. <파친코>는 당대 벌어졌던 끔찍한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리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일본인들을 다 악마화 하지는 않는다.

사실 <파친코>가 전 세계가 극찬과 호평을 쏟아내는 작품이지만 유독 일본에서 외면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저들이 부정하는 역사를 과감하게 다루고 있어서다. 하지만 여기서도 <파친코>가 가진 적절한 균형감각은 중요해 보인다. 그저 감정적으로 악마화해서 당대의 참상을 그려내기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 <파친코>가 담는 역사가 더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수가 어떻게 성장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관동 대지진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전한 <파친코>는 7회 마지막에 짤막한 자막을 더했다. ‘1923년 9월 1일 진도 7.9의 지진이 관동 지역을 덮쳤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에는 일본 자경단에게 무고하게 희생당한 한국인들도 있었다. 살해된 한국인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많은 역사학자는 그 수가 수천에 이를 것으로 본다.’

아마도 <파친코> 7회를 관동 대지진에 할애하고 이를 위해 당대의 거리와 도시를 CG를 더해 복원해낸 그 스펙터클에 담긴 진심이 바로 이 자막에 있지 않을까. 단 몇 줄의 자막이면 충분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저들에 의해 부정당하는 역사를 드라마 한 편이 어떻게 전 세계에 알려줄 수 있는가를 이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애플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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