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대작이지만 진짜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1,000억 원.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윤여정이 출연했을 때 유재석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제작비가 1,000억 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놀란 바 있다. 시즌1이 8부작으로 회당 100억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파친코>는 엄밀히 말해 한국드라마는 아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코고나다 감독이나 진하 같은 배우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하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고, 그 문화를 한인 1.5세대들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드라마의 유전자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드라마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1,000억 원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어마어마한 수치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러한 1,000억 대작 작품에 담겨진 디테일들의 섬세함이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대작이라면 스펙터클한 영상을 떠올리지만, <파친코>는 그런 장면보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디테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 오사카로 떠나게 된 선자(김민하)에게 엄마 양진(정인지)이 쌀을 사 밥을 해주는 에피소드다.

고국에서 난 쌀로 밥 한 끼를 해주기 위해 시장에 나온 양진이 쌀집 아저씨에게 쌀을 사는 이야기나 그걸로 밥을 해서 선자에게 먹이는 장면, 그리고 그걸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선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섬세한 감정들을 담아 전해진다. 일제 때문에 함부로 쌀을 팔 수 없다는 아저씨가 이제 고국을 떠나는 딸을 위해 한 끼 밥을 지어주고 싶다는 양진의 이야기를 듣고는 선뜻 쌀을 내주는 장면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정’이 묻어난다.

이 양진이 해준 밥 한 끼의 서사는 일본 오사카에 도착한 선자에게 경희(정은채)가 첫 끼로 내주는 쌀밥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 1989년 나이든 선자가 솔로몬을 돕기 위해 재일 교포의 집을 찾았다가 대접받은 밥 한 끼의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밥을 먹고는 그것이 고국에서 난 쌀로 지은 밥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 고국을 떠나올 때 엄마가 지어줬던 마지막 밥 한 끼의 기억이 어떻게 선자라는 인물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뿌리 깊게 내려지는가를 <파친코>는 이 밥 한 끼의 서사로 그려낸다.

<파친코>는 한인 1.5세대 미국인들이 만든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네 드라마가 배워야할 지점들이 적지 않다.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여된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우리도 시도된 바 있지만, 대부분 스펙터클과 볼거리에 치중하다 망한 아픈 경험을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00억 대작 <파친코>가 보여주는 디테일에 집중함으로써 느껴지는 감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또한 김민하나 정인지는 물론이고 선자의 아버지 역할을 했던 이대호처럼 그저 이름값이 아니라 작품에 어울리고 실력을 갖춘 배우들을 과감하게 캐스팅하는 면도 배워야할 지점이다. 원톱이니 투톱이니 하며 스타캐스팅에 힘을 들여 만든 작품들이 의외로 실망을 주는 일이 적지 않고, 때론 제작진과의 갈등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은 게 우리네 현실이다. 작품이 우선이고 그리고 그 작품에 맞는 배우를 유무명을 떠나 캐스팅하는 것. <파친코>라는 작품이 국내외의 호평을 받는 이유가 이런 합리적인 선택에서 나온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애플TV+]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