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만 당당하게... ‘유퀴즈’, 윤여정이 일하는 자세

[엔터미디어=정덕현] “군산에서 식당을 가게 됐어요. 그냥 동네 조그만 식당이야. 김치찌개 팔고 고기 팔고 그러는 집인데, 그 주인이 나한테 저쪽 테이블에서 보낸다고 사이다 한 병을 갖고 오셨더라고요. 그리고 저쪽에서 누가 이렇게 인사를 해요. 그냥 열심히 일하시는, 노동하시는 분이시더라고요. 그거를 제가 대접할 건 없고 선생님 드시라고 그러는데 내가, 그 집에서 잡수시면서 나한테 보내준 거가 너무 울컥해갖고 내가 울었다잖아... 그래서 같이 간 애는 날 그렇게 놀려. 근데 내가 그 아저씨가 너무 아름답고, 그리고 사인 하나 해달라고 그래서 어머나 사진도 찍어드리고 싶더라고. 내 몰골이 너무 흉해서 안 찍었지만... 찍어 달란 말 안 하는데 뭐하러 찍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고. 사이다 한 병을 보내는 거가 내가 진짜 와인 한 병 보내는 것보다 더 감사했어 진짜.”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윤여정은 촬영 도중 있었던 에피소드로 군산의 한 식당에서 어떤 노동하는 분이 보내준 사이다 한 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거기에는 윤여정이 직업인들, 특히 힘들게 생계를 위해 일하는 분들에 대한 남다른 마음이 묻어난다. 그는 알고 있다. 여유 있는 이들이 선물하는 비싼 와인 한 병보다, 여유가 별로 없어도 수줍게 건네는 사이다 한 병에 더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이미 영화 <미나리>로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그의 말과 행적들은 하나하나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처럼 회자된 바 있다. 그래서 <유퀴즈 온 더 블럭> 출연에 새로운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등장부터 달랐다. “회사명이니까 애플이라고 해야겠네요. 사과라고 할 순 없잖아요.” 대놓고 “홍보하러 나왔어요”라며 자신이 최근 촬영을 마치고 이제 방영을 앞둔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홍보가 출연의 이유라는 걸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굳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작품에 나갔으니 홍보는 해야 되는데 어디를 나가야 되냐고 물었고 이 프로그램에 나가라 해서 나왔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솔직히 꺼내놓으면서 그는 “죄송해요. 비굴해서.”라고 덧붙였다. 사실 많은 배우들이 출연 작품 홍보를 위해 나오기도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이를 아예 솔직히 꺼내놓고 당당하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윤여정은 ‘일’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이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촬영을 하며 영하 12도에 길바닥에 누워 있는 신을 찍자 주변에서 너무나 미안해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내가 팔자가 세서 그런 거니까.” 물론 그 역시 촬영을 할 때면 매일 아침 “저 감독을 죽일까 내가 죽을까” 고민할 정도로 힘들다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하지만 군산 어느 작은 식당에서 마주한 사이다 한 병 같은 일로 다시 일을 하는 힘이 난다고 했다.

이번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여정의 이야기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일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일이 솔직히 쉽지만은 않아 투덜대면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생계형 배우의 면면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생계로 일하는 그 성실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자존심만은 지키는 당당함을 보였다. <파친코> 캐스팅 과정에 대한 일화는 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애플에서 오디션을 꼭 봐야 한다고 하자 윤여정은 자신이 그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은 오디션 봐서 떨어진 여자가 된다며 오디션을 못 보는 이유를 밝히면서도 동시에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 또한 전했다는 것. “없는 사람일수록 자존심은 있잖아.” 유재석에게 툭 던지는 그 말에 그가 가진 일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그러면서도 지켜내려는 자존심이 느껴졌다.

애플에서 무려 1,000억 원을 들여 제작하는 드라마이고 그래서 애플의 입김이 여기저기서 나왔던 상황일 테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저들에게 했다는 말에는 그의 당당함이 묻어났다. “I don’t care Apple or pear(사과든 배든 전 관심 없고요). I need to go home(집에나 보내 주시죠).” 또 1,000억 원이나 들어갔다며 놀라움을 표하는 유재석에게 그는 이렇게 말해 감탄하게 만들기도 했다. “남의 돈은 관심 없고 날 얼마 줬느냐가 중요하지.”

그는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서, 솔직히 힘든 것이지만 또 그렇다고 고개 숙일 일도 아닌 어떤 것이라는 당당한 태도를 드러낸다.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때 “이게 바로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전한 수상소감이 감동을 준 건 바로 이런 그의 일에 대한 태도가 묻어나 있어서다. 미국에서 돌아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일이 들어오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시간당 2.75달러를 받는 슈퍼 캐셔 일을 할까도 고민했다는 그였다.

“얻은 거는 허명이지. 뭐 유명해졌다는 거. 근데 그 유명해졌다는 거가 그냥 진짜 그냥 이유 없이 치켜세워졌다가 또 이유 없이 매도당하잖아요. 그런 거가 진짜 거품 같은 거죠. 그래서 얻은 건 그 거품? 잃은 거? 잃은 거는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일로 했으니까. 사람이 사지육신 멀쩡하면 일해야지. 살아있으면 일해야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뭘 해요? 후회도 없고 잃은 건 없어요.” 그는 반세기가 넘은 배우 인생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묻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일을 하는 대부분의 직업인들은 때론 하는 일과 벌이의 크기에 따라 귀천이 나뉘어 평가되기도 한다. 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가 어딘가 비루한 것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윤여정은 말한다. 일은 힘들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무엇이든 또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고개 숙일 그런 대상은 아니라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라고. 오늘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직업인들에게는 윤여정이라는 존재가 배우 그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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