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차원이 아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결국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출연했다. 지난 13일 윤 당선인의 녹화 사실이 알려진 후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던 상황이었다. 그 논란에는 정치색이 드리운 그림자도 적지 않지만, <유퀴즈>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지금껏 해왔던 방향성과 ‘정치인 출연’이 과연 어울리는가 하는 근본적인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방송 프로그램이 가진 긍정적 이미지, 특히 유재석이 가진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그것이다.

이날 방송은 ‘어느 날 갑자기’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특집으로, 윤석열 당선인은 물론이고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길거리 토크쇼를 했을 때 우연히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은행원 이성엽씨, 가수에서 뉴욕 변호사가 된 이소은씨, 댄서에서 한국인 최초 디올 패턴 디자이너가 된 임세아씨가 출연했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키워드로 의미적으로는 묶여질 수 있다고도 보였지만, 그래도 윤석열 당선인의 출연은 돌출된 면이 있었다.

워낙 논란이 컸던 탓인지 윤석열 당선인의 출연은 그다지 홍보되지도 않았고 방송 분량도 19분 남짓으로 짧았다. 내용도 그리 새로운 것이 별로 없었다. SBS <집사부일체>에서 이미 나왔던 내용들이었고, 다른 내용이라면 야식 이야기나, 민초파냐 아니냐에 대한 이야기, 본래 꿈은 검사가 아닌 목사였다는 것 정도였다. 대신 유재석과의 토크가 아닌 심층 인터뷰로 윤석열 당선인은 트루먼 대통령이 자기 책상에 써놓은 팻말의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는 문구를 언급하며 대통령이라는 직업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비판과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위치라는 걸 강조했다.

사실 대통령 당선인이 방송에 나오냐 안 나오냐 하는 문제는 방송 제작진과 방송사가 결정할 일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과 취지에 맞고 그래서 누군가를 섭외해 출연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선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에 대해 시청자들 또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비판적 입장을 토로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유퀴즈>와 정치인 그것도 차기 대통령인 당선인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본래 유재석이 길거리로 나가 평범한 서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퀴즈> 본래의 취지였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길거리로 나갈 수 없게 되면서 특정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카테고리의 인물군을 섭외해 특정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가치로 ‘서민’들을 향해 있는 ‘낮은 시선’을 든다. 그래서 심지어 연예인들이 출연할 때조차 특별한 동기나 맥락이 없을 때는 비판받곤 했던 <유퀴즈>였다. 당선인이라는 위치를 떠나서 정치인 출연 자체가 <유퀴즈>와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유퀴즈> 제작진과 tvN 그리고 심지어 유재석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출연 결정의 문제가 과연 제작진이나 유재석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싶다. 이 정도의 출연이라면 ‘일개’ 제작진이나 MC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해야 했을 수 있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유재석은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소회를 꺼내놨고 거기에 대해 윤석열 당선인도 “그럼 제가 안 나올 걸 그랬나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보통의 상식적인 섭외라면 제작진이 방송의 취지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섭외에서 과연 이러한 ‘자유로움’이 있었을까. 실제적인 압력 같은 건 없었다고 해도 출연 의지만으로도 이를 거절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미디어 오늘 단독보도에 따르면, <유퀴즈>는 지난해 4월 청와대측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출연에 대해 의사를 타진했지만 프로그램 콘셉트와 맞지 않아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 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된 그 전후사정 속에 단지 ‘프로그램 콘셉트’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들이 존재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섭외에 프로그램 이외의 문제들이 개입된다는 건 상식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번 <유퀴즈> 논란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미칠 여파도 만만찮지만, 향후 정치인들의 방송 프로그램 출연에 있어서 그것이 과연 취지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날선 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논란이 단지 정치색에 따른 공방 때문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방송 프로그램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균형의 문제 때문일 수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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