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울고 웃기던 ‘유퀴즈’의 안타까운 현주소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예능 <유퀴즈> 제 155화 ‘○○의 비밀’편에서 단연 압도적인 인물은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월가의 28년 차 신순규 애널리스트였다. 시각장애인이지만 뉴욕 월가, 그 중에서도 1818년에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신순규씨.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가게 됐는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출연자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데는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은 기본이고, 그를 지지해주고 밀어준 주변인물들이 존재했다. 어떻게든 아들의 시력을 회복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더 이상은 어렵다는 얘길 듣고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울었다는 어머니.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고 참고서들을 일일이 점자로 다 만들어 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던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고, 피아노를 친 게 계기가 돼서 미국 유학을 갔을 때 그를 가족처럼 받아줬던 미국가족들이 있었다.

더 놀라웠던 건 시각장애인 학생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어 못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던 학교와 선생님들이었다. 손으로 만져가며 느낄 수 있고 모형을 만들어주는 선생님부터, 심지어 양궁도 할 수 있다며 시도할 수 있게 해준 선생님들까지 있었다. 치열하게 공부해 하버드 심리학과에 들어간 그가 월가의 애널리스트가 된 과정에도 시각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교수님과 그를 받아준 월가 사람들이 있었다. 엄청난 성공담이지만, 신순규씨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영향에 의해 가능한 것인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감동적인 사연에도 불구하고 <유퀴즈>의 게시판은 여전히 정치색 가득한 댓글들로 채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으로서 <유퀴즈>에 출연했던 여파는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시청자들은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서민들이 중심이 되어 온 <유퀴즈>에 정치인이 출연한 사실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과거 <유퀴즈>가 이런 감동적인 사연들을 내놓았을 때 나왔던 따듯한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들이 안타깝게도 펼쳐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걸까. <유퀴즈>는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지만 이미 더 이상 과거의 <유퀴즈>가 아닌 이미지가 덧씌워져 버렸다. 이 프로그램과는 아무 상관없는 정치판의 공방전이 게시판에 가득하고, 심지어 언터처블로 여겨졌던 유재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목소리들까지 만들어졌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서민들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늘 따듯한 반응들이 넘쳐났던 프로그램. 그렇지만 그렇게 생겨난 영향력에 정치가 손을 얹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졌다.

정치와 예능이 손을 잡은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과거 SBS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선 후보들이 출연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을 보여준 바 있고, JTBC <썰전>의 성공으로 정치인들이 정치, 시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런데 <유퀴즈> 출연이 이토록 만만찮은 후폭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과 맞지 않은 정치인 출연과, 이로 인해 추가로 불거졌던 과거 문재인 대통령 출연 거부 사실 같은 사안들이 더해지면서 어떤 ‘의도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신순규씨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성장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주변인들의 도움과 지지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유퀴즈>도 그 성장이 가능했던 건 제작진도 해명을 담은 엔딩을 통해 스스로 밝힌 것처럼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이 심어 일궈놓은 꽃밭에 정치가 함부로 들어선 건 그래서 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시청자들이 지금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다. 정치색이 덧씌워져버리면 제 아무리 감동적인 사연조차 묻힐 수 있다는 걸 현 <유퀴즈>는 안타깝게도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