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꽃밭을 짓밟았나... ‘유퀴즈’ 심경 토로의 한계 그 안타까움
시간 지나야 알게 될 ‘유퀴즈’가 현재 겪는 일들의 내막

[엔터미디어=정덕현] 지금 현재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은 폭풍 속을 걷는 중이다. 아직 그 폭풍은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평온한 바다를 잘 항해해오던 <유퀴즈>는 왜 이런 폭풍 속에 들어오게 된 걸까.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녹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조금씩 피어오르던 먹구름은 별다른 예고 없이 지난주 갑자기 윤석열 당선인의 방송분이 방영되면서 태풍으로 바뀌었다. 약 19분 남짓의 짧은 방송 분량. 사실 방송으로만 보면 별 재미도 의미도 없는 내용이었다. 내용 자체가 별로 없어서인지, 녹화 사실이 알려진 후 이미 후폭풍이 만만찮을 걸 예감해서였던지 분량은 다른 출연자들보다 짧았고 편집이나 자막도 다소 건조했다.

이날은 <유퀴즈>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엔딩 자막도 빠져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각의 인물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등장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 <유퀴즈>에게 있어 엔딩 자막은 이들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는 의미화이자 메시지를 담는 부분이다. 그 자막이 빠져 있다는 건 이 방송이 그 자체로 평시와 같지는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

일주일 내내 논란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재명 후보와 김부겸 총리도 출연을 거절당했는데 그 이유는 “정치인의 출연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왜 윤석열 당선인은 됐느냐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어떤 외압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아무런 해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 화살이 제작진에게도 또 출연자인 유재석에게도 나아가 CJ에도 또 이런 그 누구에게도 득이 아닌 실로만 돌아간 프로젝트를 제안한 윤석열 측에도 쏟아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고 다시 돌아온 <유퀴즈>가 이날 주제로 가져온 건 ‘너의 일기장’ 특집이었다. 탐조일지를 쓴 김어진씨와 조선시대 승정원일기를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 정영미씨, 택시에 탄 승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뒷좌석에 마련한 노트에 편지를 쓰게 한 택시기사 명업식씨 그리고 더 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그 일기 쓰는 일이 일상이 된 박보영이 출연했다. 하지만 이날 가장 주목을 끈 건 지난주 빠져 있었던 엔딩 자막에 담긴 <유퀴즈> 제작진의 제작일지였다.

“2018년 어느 뜨거웠던 여름날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길바닥의 보석 같은 인생을 찾아다니며 한껏 자유롭게 방랑하던 프로였다. 저 멀리 높은 곳의 별을 좇는 일보다 길모퉁이에서 반짝이는 진주 같은 삶을 보는 일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실로 <유퀴즈>의 시작은 시청률은 낮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높은 위치에 선 유재석 같은 스타가 길거리로 나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삶을 마주하고 그 위대함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제작일지는 이 프로그램을 하며 제작진들이 얼마나 열정과 소신을 갖고 일해왔는가를 강변했다. “유퀴즈는 우리네 삶 그 자체였고 그대들의 희로애락은 곧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이 프로그램을 일궈 온 수많은 스태프, 작가, 피디들은 살면서 또 언제 이토록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 써 내려가는 위대한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 어느 소박한 집 마당에 가꿔놓은 작은 꽃밭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라서 날씨가 짓궂더라도 계절이 바뀌더라도 영혼을 다해 꽃피워 왔다.”

2019년 6월 <유퀴즈>가 ‘개화’라는 제목으로 인천을 찾았을 때 거기서 만났던 68세 꽃밭 요정 하유자 할머니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도로부지로 언제 개발이 될지 알 수 없어 마을들 사이의 왕래가 끊겼던 곳에 꽃을 하나둘 심어 꽃밭을 만들고 그래서 나비도 사람도 모여들게 됐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당시 이 이야기는 <유퀴즈>가 걸어가려는 길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을 감동하게 해준 바 있다. <유퀴즈>에게 ‘꽃밭’은 그런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일주일 간 유재석에게 쏟아진 비판과 악플세례에 대한 입장도 이 엔딩 자막에 담았다. “자신의 시련 앞에서는 의연하지만 타인의 굴곡은 세심하게 연연하며 공감하고 헤아리는 사람. 매 순간이 진심이었던 유재석과 유재석을 더욱 유재석 답게 만들어준 조세호. 두 사람과 함께한 사람 여행은 비록 시국의 풍파에 깎이기도 하면서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시선만큼은 목숨처럼 지키고 싶었다.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땐 고뇌하고 성찰하고 아파했다.”

그리고 그간 한 걸음 한 걸음 꽃 하나씩을 피워내는 정성으로 가꿔온 ‘꽃밭’을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한 주 한 주 관성이 아닌 정성으로 일했다. 그렇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다.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우리의 꽃밭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이라고. 시간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 내용은 ‘정치인 출연’이 <유퀴즈>를 훼손한 것에 대한 제작진의 항변처럼도 보였지만, 다르게 보면 이러한 출연 이후에 벌어진 갖가지 논란과 비판들에 대한 항변으로도 읽힐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꽃밭’을 짓밟았는가 하는 주체가 빠져 있어서다. <유퀴즈>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인 꽃밭을 지키려면 보다 분명한 항변의 대상을 밝혀야 하지만, 그걸 밝힐 수 없는 건 제작진의 한계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결국 이 문제는 제작진이나 유재석이 어떤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정치권과 방송국이 얽혀 있는 문제를 어찌 이들이 나서서 입장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정치권과 방송국이 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어, 눈에 보이는 제작진과 유재석에게 돌팔매가 집중되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이 문제가 가라앉기 힘들다. 시간 지나야 그 내막을 알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보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이들이 나서야 한다. 그동안 정성스레 일궈온 꽃밭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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