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 “독일도 분단을 겪은 국가잖아요. 우리 친구 중에 고마운 친구 한 명이 이러더라고요. 나래, 우리 아리랑 불러가지고 한국도 독일처럼 될 수 있게 같이 바라주면 좋겠다.” 독일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 지휘자 정나래는 독일 소년 소녀로 구성된 단원들에게 한국의 ‘아리랑’을 합창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을 때 단원 중 한 명이 그런 고마운 말을 했다고 했다.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천의 얼굴’편에 나온 정나래의 그 한 마디에는 이 합창단이 어떻게 타국에서 한국 가사로 부른 ‘아리랑’으로 현지 독일인들을 감동시키고 대회에서 상을 수상한 저력이 어디서 나왔는가가 담겨 있었다. 결국 합창이란 저마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데 그 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 독일 친구의 마음은 이미 이 합창의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는 걸 말해준다. 이 합창단은 결국 30년 전통의 어린이 청소년 합창대회인 2022 유겐트 징트에서 ‘아리랑’과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한국 곡으로 대회 1등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물론 독일 친구들이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한국말을 배워야 했고 무엇보다 가사에 담긴 정서를 이해해야 했다. 그래야 노래에 이 노래가 가진 감정을 담을 수 있어서다. 그래서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게 해주기 위해 한국드라마를 보고 도르트문트 한글학교를 찾아가 한국문화수업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대로 노래하기 위해 8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리랑을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꼭 사람의 인생 같다.” 독일 관객의 그런 반응은 정나래가 생각한 ‘아리랑’의 정서 그대로였다. 아리랑은 그저 한만이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있는 삶 전체를 담은 곡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독일 관객들은 ‘아리랑’을 듣고 한국의 역사가 궁금하다고도 했고, 또 독일 광복절 행사에 한인 분들의 초청으로 공연을 했는데 그 분들의 반응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저는 존경하는 분들이 독일에 파견 오셨던 간호사, 광부분들인데 그 분들이 아리랑 공연 끝나고 나서 막 눈물 흘리시면서, 나래야 고맙다 이러시더라고요. 내가 외국인한테 아리랑을 듣다니.. 저는 그분들한테 감사하거든요. 그 분들이 잘 살아와주셨기 때문에 저처럼 후세에 독일 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 성실하다, 믿음이 간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거든요.”

방송에 나온 합창단은 ‘아리랑’과 ‘고향의 봄’ 그리고 ‘수리수리 마수리’를 연이어 불렀는데 독일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지만 나라와 언어의 벽을 훌쩍 뛰어넘는 바로 그 지점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분단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라와 언어의 장벽마저 훌쩍 넘겨버리는 합창은 그래서 그저 노래의 차원을 넘는 하나의 감동적인 퍼포먼스로 다가왔다.

또한 정나래가 단원들과 신뢰를 얻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 합창이라는 음악적인 결과물이 각각의 개개인이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고 가까워지는 그 과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외국인이고 그래서 독일 합창단을 지휘한다는 걸 믿지 못하는 일부 학부모님의 불신을 정나래는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 단원들은 정나래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나래는 가족이야.” 명절 때 자신만 타국에서 지내고 있어 가족이 그리워 우울해 할 때 단원들이 다가와 “나래, 우리가 네 가족이잖아”라고 말해줬다는 것.

흥미로웠던 건 이 정나래와 독일 합창단의 이야기가 최근 다시 시작한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서민들의 이야기들을 쌓아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었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예인 출연이 잦아졌고 기업 홍보의 색채가 붙는데다 심지어 정치색까지 더해지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휴지기를 거치고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결국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이러한 신뢰를 어떻게 다시 회복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됐다.

정나래와 독일 합창단이 전하는 진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하모니의 감동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앞으로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단서를 전하고 있다. 여전히 불신의 시선으로 질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고 믿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초심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와 조금씩 신뢰를 회복해가는 것.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야 시청자와도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 이야기는 전하는 듯 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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