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김종기 이사장을 통해 전한 학교폭력의 엄청난 상처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들은 스스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고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연달아. 다시 그 길을 걸어올랐을 아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재석은 눈시울이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감히 저희가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심정을.”

삼성에서 해외지사까지 맡아 열심히 일했던 아버지의 삶은 27년 전인 1995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 아들 대현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영문조차 모른 채 영안실로 달려온 그는 원통함과 한심함, 죄책감, 회한, 자책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제야 옷이 찢기고 상처를 입고 온 일들이 아들이 얘기한 것처럼 동네 불량배들 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들은 밤에 불려나가 놀이터, 노래방에서 힘든 시간을 반복했던 거였다.

가해학생들은 술에 취해 영안실에 나타나 “죽어서 골치 아프게 생겼다”며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친구들이 삐삐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들을 계속 보내왔다. 대현이의 친구들조차 입막음을 위해 그 가해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는 참을 수 없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얘들을 없애버리고 한국을 뜨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어떤 아버지라도 똑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런데 김종기 이사장은 벌벌 떠는 가해학생들을 만난 후 마음을 바꿨다. 복수를 하려 했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늘에 맡기자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제2의 대현이 없도록 하겠다고 ‘학교폭력’과 싸우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그래서 모이게 된 피해자 부모들과 스스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그것이 푸른나무재단의 전신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만나주지 않아 담당 공무원과 대화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들에 대한 의무감,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폭력 자체를 교육부가 인정하지 않던 시절, 46만 명의 서명을 통해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청원했고 드디어 법이 제정됐다. 그것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었다.

그렇지만 법률이 제대로 작동하진 않았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권모군이 유서 5장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 불행이 또 터졌다. 유서에는 물고문에 전선으로 목을 감고 돈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다. 문자 메시지에는 ‘내가 죽일 거니까 니 혼자 죽지 마라.’는 글까지 있었다.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국무총리가 나서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고 법은 드디어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27년 간 학교폭력과 싸워온 세월은 그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19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것. 그 상을 통보받고 혼자 뒷산을 걷는 데 눈물이 났다고 했다. 누군가 이걸 지켜보고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재산도 재단에 유증했다며 김종기 이사장은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상속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는 것. 하지만 딸은 그런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아빠가 하신 거고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니까 이 결정은 아빠가 알아서 하세요. 전 제가 살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대현이와 친했고 그래서 명절 때면 찾아와 같이 소주도 한 잔씩 한다는 성시경이 재단의 20주년 행사에 남긴 축사는 아마도 김종기 이사장에게는 아들이 대신 전하는 말처럼 느껴졌을 성 싶었다. “벌써 20년이 지난 기억이지만 대현이는 똑똑하고 감성적이고 끼가 많고 운동하다가 다쳐도 멀쩡하고 그랬어요. 내가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저와 친구들에게는 가장 처음 있는 일이었고 충격이 너무 컸어요. 하지만 제 친구 대현이로 인해 시작된 이 일들로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일이 훨씬 덜 일어났다고 믿기에 이번 재단의 20주년부터는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아들 사진을 꺼내놓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아버지는 그렇게 27년 간 학교폭력과 싸우며 보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아빠가 회사 일만 알고 잘못했던 것을 사과하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너 간 다음에 많은 아이들을 구했으니 이제 네가 날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은 먼저 가게 된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27년 간 싸워온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에둘러 학교폭력이 얼마나 엄청난 상처를 남기는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전국학교폭력상담전화 1588-9128)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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