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기록하듯 ‘유퀴즈’도 시대의 삶들을 기록해나간다면

[엔터미디어=정덕현] “두 건 세 건 할 경우 순수익은 2만 원 정도입니다. 큰돈이죠?”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씨(82)의 그 말에 유재석과 조세호는 적이 놀라는 얼굴이었다. 4,5년 전만 해도 하루 택배가 5건에서 6건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루 3건 정도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루 버는 돈이 2만 원이라는 것. 아침 9시까지 종로3가역에 나가 주문 메시지를 받고 지하철로 택배를 하루 종일 하는 노동의 양을 생각해보면 너무 적은 돈이 아닐 수 없다.

건수가 적어서 중간 중간 지하철 의자에 앉아 주문이 올 때까지 기다리곤 한다는 어르신은 무료하지 않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넷플릭스 시청을 한다는 어르신에게서 현 미디어에 익숙한 면모가 느껴졌다. 실제로 조용문씨는 그 연세에도 매일 매일 지하철 택배를 하며 가게 되거나 보게 된 것들을 사진으로 찍고 글을 써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댁에서 아침에 나오셔가지고 대기하는 시간도 있고 그런데 비해서는 2만원이면 조금 너무...” 유재석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그 말에 조용문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2만 원도 큰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움직이면 2만원도 까먹는 생활인데 그렇잖아요?” 놀랍게도 조용문씨는 퇴직 전에 조폐공사에서 30년간을 근무했다고 했다.

자식들은 병이 혹여나 날까봐 일을 그만 하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작 조용문씨는 “놀면 더 아프다”고 했다. 노인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고 걸어 다니는 게 최고 운동이라는 것. 실제로 아내는 남편이 퇴직 직후에는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지하철 택배 일을 하면서 더 건강해졌다며 그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조용문씨가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게 된 건 ‘평생 간직하고픈 글’이라는 이날의 주제와 관련이 있어서였다. 그가 운영하는 ‘지하철 택배원 일상’이라는 블로그에는 지하철 택배를 하며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나 어떤 공간들에 대한 단상들이 가득 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고 이동하는 지하철이지만, 그걸 중심으로 참 다양한 볼거리나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걸 이 블로그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용문씨가 이런 일상의 기록을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IMF 시절 은퇴 후 주위의 권유로 사업을 했지만 얼마 안가 망하게 됐다는 것. 그 충격이 너무 깊이 불면증에 빠졌고 심지어 과거를 다 잊어버리기도 했다는 것. 지금은 치료 후 나아졌지만 이미 잃어버린 기억들은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일상 기록을 남기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블로그에 담긴 글들에서는 아주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이 묻어난다. 지난 29일 블로그에 올린 ‘남성역에서 본 다정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자판기 커피 한 컵을 나눠 마시는 부부의 이야기로 조용문씨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글귀가 있다. ‘하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400원짜리 일회용 컵 한 잔에도 이렇게 정과 행복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두 부부가 앞으로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실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자신이 출연한 일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글로 남겨놓기도 했다. ‘제가 이렇게 <유퀴즈>에 출연하게 된 원인은 짐작컨대 말을 잘 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도 아닐 것입니다. 직업이 좋아서도 아닐 것이고요. 제가 어떤 훌륭한 일을 해서는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는 그럼에도 ‘하찮은 일 지하철 택배를 하는 노인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배송을 하면서 보고 듣는 일을 블로그에 사진으로 글로 남긴다는 것이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대단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이유가 그래서였을 거라고 적었다. 그런데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런 소박하지만 위대한 일상을 사는 분들을 찾아 방송에 담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의 가치가 오히려 이 분의 출연을 통해 드러난다.

세상에는 유명한 사람도 많고 성공한 이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위대한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니다. 저마다의 소중한 일상들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런 분들이 있어 우리 역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조용문씨 같은 분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유 퀴즈 운 더 블럭>의 존재 가치가 아닐는지. 블로그에는 이날 방송에 대한 따뜻한 반응들이 댓글창에 가득 채워졌다.

‘너무나 따뜻한 인터뷰!!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멋지세요! 보다가 왜 저 혼자 눈시울이 붉어졌는지.. 항상 열심히 사시는 저희 아빠가 생각났나 봐요.’ ‘보면서 마음이 너무 따뜻했고 나태하게 시간을 죽이는 제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일상 속에서 늘 즐거우시길 바래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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