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프로그램들에 드리워진 그림자들, 호사다마라 치부하기엔
‘놀면’의 퇴행, ‘런닝맨’의 논란, ‘유퀴즈’의 변질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기대가 높아서 생기는 호사다마일까. 아니면 실제로 어딘가에서 부터 생겨나는 균열일까. 최근 유재석이 출연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의 대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MBC <놀면 뭐하니?>와 장수프로그램 SBS <런닝맨>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유 퀴즈 온더 블럭>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들이 그것이다.

MBC <놀면 뭐하니?>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세웠던 ‘부캐’ 콘셉트가 점점 희석되고 대신 과거 <무한도전>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혼자 이끌어가던 방식에서 탈피해 정준하, 하하와 더불어 신봉선, 미주를 고정 출연자로 끌어왔다. 그런데 이들이 시도해 보여주는 아이템들이 <무한도전> 시절부터 <놀면 뭐하니?>까지 익숙하게 만들어져 왔던 복고과 음악을 소재로 한 아이템과, 정준하, 하하와 ‘무한상사’ 시절부터 해왔던 캐릭터 콩트 등 새로울 것 없는 과거로의 퇴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방영된 <놀면 뭐하니?>에서 정준하, 하하와 함께 시도한 무근본 콩트는 서로 깐족대며 상대방의 부아를 치밀어 오르게 만들고 심지어 뺨을 때리는 식의 개그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금의 감수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때려서 웃기는 개그 코드가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다. 유재석이어서 그 정도로 넘어갔지만, 만일 다른 개그맨들이 했다면 꽤 큰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최근 달라진 대중들의 감수성과 그래서 거기에 맞는 예능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어딘지 유재석이 하는 캐릭터를 활용한 개그 방식이 정준하와 하하 같은 과거의 콩트에 익숙한 인물들과 함께 하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광경들이 만들어져서다. 그것을 복고라 주장할 수는 있지만, 사실 복고가 현재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의 대중들의 감성에 맞춰진 것이라야 한다. 즉 과거가 아닌 현재에 방점이 찍히는 게 복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마침 <런닝맨>에서 터진 논란도 잘 들여다보면 과거 캐릭터쇼 시절에 했던 복고적 게임 소재를 그대로 가져온 데서부터 비롯한 면이 크다. ‘당연하지’ 게임은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됐던 <X맨 일요일이 좋다>에서 시도됐던 게임이다. 서로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평정심을 잃고 “당연하지”라고 말하지 못하면 지는 게임. 게임이라고 해도 사적인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들어오는 질문들은 그 때는 허용됐을지 몰라도 지금은 불편함을 주는 것들이 됐다.

“너 <쇼윈도>에서 키스할 때 그 사람 떠올렸지?”라는 양세찬의 질문은 그것이 단지 게임이라고 해도 전소민은 물론이고 전 남자친구에게도 심지어 이 드라마에도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작진이라도 이 질문의 부적절함을 인지했어야 하지만 거기에 자막까지 달아 편집하지 않고 내보냈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무감각을 보여준다. 이 논란이 터지자 과거 <런닝맨>에서도 이미 부적절한 멘트나 농담, 설정 등이 적지 않았다는 비판이 더해진다.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시대를 읽지 못해 불편함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도 유재석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중 가장 시대의 트렌드를 잘 읽어내고 발맞췄다 얘기되는 프로그램은 단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시작부터 길거리에 나가 열심히 살아오신 서민들과의 진솔한 토크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길거리 대신 특정 공간에서 특정 주제에 맞는 카테고리로 출연자들을 섭외해 토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았던 건 이 토크쇼가 가진 낮은 시선이었다. 평범한 이들의 위대함을 찾아내 줬던 것.

하지만 어딘가 최근 들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조금씩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기업 홍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인물들이 프로그램을 점점 채우기 시작해서다. 이른바 ‘베네핏이 있나요?’ 특집에서도, 물론 직원들이 등장한 것이지만, 결국은 회사 홍보의 색깔이 짙게 느껴졌다. 판교의 게임 회사, 온라인 패션회사, 직장인 커뮤니티 앱에서 일하는 직원과 대표가 나와 저마다의 회사가 가진 베네핏을 자랑하는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이날 프로그램은 후반부 40분 간을 채워준 이정재가 주인공이었다. 물론 최근 <오징어게임>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게스트였지만 연예인보다는 일반인들에 초점이 맞춰져 온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섭외 흐름에서는 아쉬움도 남는 면이 있었다.

물론 이건 유재석이라는 개인의 위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재석이 지금껏 오래도록 최정상의 위치를 유지해온 데는 자신만이 아닌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시대와 공감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과 관여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위기라 말할 순 없지만, 뚜렷한 징후들이 모든 프로그램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건 긴장감을 갖고 상황을 들여다봐야 하는 면이 있다. 그저 잘되는 와중에 생겨난 ‘호사다마’라 치부해서는 진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일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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