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김태호 PD, 무관의 이경규·강호동이 말해주는 지상파 예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2021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의 주인공은 이변 없이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대상이다. <놀면 뭐하니?>가 그에게 대상을 연거푸 준 수훈 프로그램이 됐다. 실제로 올해 <MBC 연예대상>의 주인공은 <놀면 뭐하니?>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을 휩쓸었다.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과 '베스트 커플상'(유재석, 이미주, 하하)을 비롯해 여자 최우수상(신봉선), 베스트 팀워크상(MSG워너비), 베스트 캐릭터상(정준하, 하하), 여자 신인상(이미주) 등 10관왕을 차지했다.

“완벽한 대상 후보인데 병마 극복이라는 인간스토리까지” 가진 유재석이 당연히 대상이라고 했던 김구라의 말처럼, 그의 대상은 사실상 기정사실이나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이번 <MBC 연예대상>에서 더 주목된 건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김태호 PD의 수상 소감이었다. “2001년 1월1일 입사해서... 올해...” 하며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는 김태호 PD는 “되게 신날 줄 알았는데...”라며 농담으로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먹먹한 느낌을 줬다.

“20년 중 15년을 토요일 저녁에 일했”으며 “그 시간 항상 유재석 님이 같이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며 존경을 표하는 김태호 PD는 이제 MBC를 떠난다. 그가 MBC를 떠나게 된 건 다름 아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추기 위함이다. 최근 MBC와 함께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에서도 그의 이런 다른 플랫폼에서의 색다른 콘텐츠에 대한 도전 욕심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MBC 연예대상>에서의 수상소감은 남다른 소회가 담겼다.

지상파 시절의 최고의 예능을 상징하는 <무한도전>을 이끌었던 그가 아닌가. <놀면 뭐하니?>라는 지상파 예능을 마지막으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사실은 지금의 급변하고 있는 방송 특히 예능의 흐름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2년 연속 <놀면 뭐하니?>로 유재석이 대상을 가져갔지만, 그건 거꾸로 보면 이외의 예능들의 정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을 보면 한때 연말이면 늘 3파전 양상을 보였던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의 자리가 점점 흐릿해져 가는 인상이 짙다. 유재석은 김태호 PD와 함께 <놀면 뭐하니?>로 여전히 굳건히 지상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이경규와 강호동은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에서 거의 실종됐다.

<KBS 연예대상>에서 <개는 훌륭하다>로 장도연과 강형욱 훈련사가 참석해 모두 상을 받아갔지만 이경규는 불참했다. 장도연이 수상 소감을 말하며 “지금 낚시 가신 이경규 선배님”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행보가 이제는 지상파 바깥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에둘러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SBS <편먹고 공치리>, KBS <신상출시 편스토랑>, <개는 훌륭하다>에 두루 출연하고 있지만 어딘지 그의 최근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나 카카오TV <찐경규>가 먼저 떠오른다.

강호동의 부재는 더더욱 뚜렷하다. <신서유기>, <대탈출>, <아는 형님>, <골신강림> 등에 출연했지만 과거 같은 존재감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이렇게 된 것은 최근 예능의 경향이 캐릭터쇼가 아닌 관찰카메라 같은 리얼리티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에 가장 유연한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은 놀랍게도 백전노장 이경규다. 그는 낚시나 반려견, 골프 같은 자신의 진짜 관심사에 뛰어들어 리얼리티 예능 도전을 하고 있고 카카오TV 같은 새로운 플랫폼 도전도 적극적이다. 반면 강호동은 어딘가 과거의 틀에 갇혀 위축된 분위기다.

올해 <MBC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이 2년 연속 대상을 거머쥔 건 그래서 이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캐릭터쇼의 상징으로서 그가 마지막 보루로 서 있다는 걸 말해준다. 명실 공히 유재석 1인체제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그로 인한 예능의 변화 속에서 이 흐름이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김태호 PD도 떠나고, 이경규, 강호동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유재석만 남았다. 내년 지상파 예능은 어떤 흐름을 보일까. 내년 연말의 풍경이 궁금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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