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시대보정 없이 ‘무도’ 코드로만 무장한다고 통할 리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2년간 TV예능의 가능성을 이끈 것은 유재석이다. tvN <유퀴즈>를 통해 선한 영향력의 바통을 이어받고 잊힌 토크쇼의 묘미를 되살렸다. 부캐라는 새로운 도전은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며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2년 연속 백상예술대상과 MBC 연예대상에서 큰상을 받아왔다. 현재 인기 예능들이 대부분 TV소비자의 고령화에 맞춰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삼는 TV조선의 전략을 따르고 있는 이때, MBC <놀면 뭐하니?>는 부캐, 1990년대 바이브를 통해 비교적 젊은 세대와도 호흡하면서 지상파 예능의 건재함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놀면 뭐하니?>는 지난해 <MBC 연예대상>을 휩쓴 영광을 뒤로 하고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태호 PD가 떠났고, 유재석은 캐릭터쇼, 꽁트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내고 있다. 남겨진 <무한도전>의 유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놀면 뭐하니?>가 추억에 천착하면서 점점 더 중장년층을 위한 TV예능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예능과 <무한도전> 리바이벌, 새로운 캐릭터쇼가 혼재되어 다양한 실험을 추구하는 듯하나, 리얼버라이어티의 전성 시절, 즉 지금은 중년이 된 X세대와 M세대의 추억 속으로 다가갈 뿐, 현행화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점에서 아쉽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던 예능대상 시상식 무대를 다시 한 번 다루는 것부터 옛날 방식이다. 실제로 대기실에 모여서 가장 처음 나눈 이야기도 4년 전 <무한도전>으로 연말시상식에 참가했던 이야기와 추억이다. 함께 추억을 쌓은 시청자들과 나누는 행복한 뒤풀이긴 하나 빈손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지상파 예능대상 시상식인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보여주는 패밀리십이나 감격의 눈물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시니컬해질 수밖에 없다. 이후 이어진 <고독한 미식가>를 패러디한 유재석과 미주의 먹방 꽁트는 어떤 의미에서 지난 1년간 봤던 모든 예능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실험적인 장면이었다.

모티브는 <고독한 미식가>지만 와 닿는 느낌은 <유퀴즈>를 무척 길게 늘어뜨려서 만든 꽁트였다. 유튜브의 시대에 무려 20여분 넘게 이어지는 어색한 상황극 속의 캐릭터플레이는 찰기가 떨어지는 반죽을 심폐소생하는 과정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기대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미주가 유재석과 1대1로 캐릭터플레이를 펼치기에 아무래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데 그 곤란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내 다른 콘텐츠에서도 수없이 봐온 관계를 왜 별도의 상황극을 통해 이리 길게 보여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레이닝 과정을 시청자들이 주말 프라임타임에 함께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발을 쓴 정준하와 꼰대 캐릭터를 잡은 하하와 함께한 상황극은 철저히 ‘무한상사’의 세계관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허나 <무한도전>과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너무 심하게 티가 나기 때문에 과거 <무한도전> 멤버 개개인들의 실제 관계가 캐릭터에 녹아들어 만들어지는 날것의 리얼리티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구력 있는 왕년의 선수들이 붙으니 상황극에 활기가 돌기는 하지만 과거 캐릭터쇼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작위적인 설정을 중화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있다.

이 숙제를 푸는 웃음 코드로 가져온 것은 과거 일본식 슬랩스틱이다. 상사가 아랫사람 따귀를 때리고 험한 말을 하는 데서 원초적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는 유재석이니까 유일하게 용인되는 개그다. 이후 진행된 몸싸움 장면도 그렇다. 만약 공개코미디 무대에 신인 개그맨들이 올렸다간 이슈가 되고 집중포화를 맞을 만한 사안이기도 하다. 유재석이 흔하게 쓰이는 ‘미친 것 아니냐’는 표현도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는 어원을 따져보면 차별과 혐오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사회적으로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표현이다.

PC주의를 내세워 불편한 개그라고 꼬집는 게 아니라, 오늘날 웃음을 만드는 방정식이 그만큼 까다로워졌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리얼리티에 몰입하는 정도와 설정의 진정성은 무척이나 높아졌다. <놀면 뭐하니?>는 이런 현실 보정에 대한 고민 없이, 과거로만 돌아간다. 공교롭게도 지난 8일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식당과 카페는 지금도 성업 중이나 <무도>가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 홍대권역의 핫스팟으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쌓여 있는 공간이었다.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도토리 페스티벌’은 물론 다음 주 본격적으로 방송되면 역주행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음원 성적이나 낮은 화제성을 볼 때 <놀면 뭐하니?>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음악 특집이 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슈로 타이밍을 놓친 탓도 있고, 2000년대가 가요계의 암흑기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똑같은 방식의 서사구조에 질린 탓 또한 크다. 연말시상식의 주인공이 되긴 했지만, <놀면 뭐하니?>가 작년에 보여준 방향성과 올해 첫 방송은 빈티지라기 보단 레트로 레플리카 같다.

년을 시작하면서 예능의 현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2021년을 지나면서 예능은 리얼리티, 일상성, 그리고 진정성이란 레벨업을 거치며 결국 드라마와 가까워지고 있다. 단, 기존 드라마보다는 리얼리티가 강조되면서 각본이 없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편을 추구한다. 그런 이때 <놀면 뭐하니?>는 꽁트 코미디, 캐릭터쇼, 기존 패턴의 반복 등 그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할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다. 물론 다양성 차원에서 이 또한 나쁠 것은 없지만 <무한도전>은 그 당시 없던 개념과 정서적 재미, 서사의 도입이란 새로움을 통해 예능의 개념을 바꿨고, <놀면 뭐하니?>도 결국 부캐라는 새로운 볼거리로 성공했다.

최근 ‘고스트바스터즈’ 시리즈를 비롯해 할리우드에서도 ‘다이하드’, ‘분노의 역류’ 등 당대의 고전을 발굴해 시리즈의 생명연장을 꿈꾸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처절하게 실패했다. 추억 속에서 콘텐츠를 발굴할 때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전성시대에는 리얼버라이어티가 신선한 경험,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지금은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세상이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설정, 세계관이 시청자들이 몰입하기에 엉성한 울타리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예능도 투명한 진정성을 요구한다. 오늘날 당시 흥행코드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시대보정이 가능한 어댑터가 필요하다. 기획부터 유재석이 늘 강조하는 노력까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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