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59회 백상예술대상’)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06년 MBC <무한도전>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알던 예능의 개념과 범주는 달라졌다. 그후 2018년까지 무려 10여 년간 기존 예능의 개념에 변화를 주고 장르적 범주를 확장했다. 그전까지 예능에서 재미란 주로 ‘웃음’을 뜻했다. 예능은 문화라기보다 오락이었으며 코미디의 유의어였다. 그만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가벼워야 했다. 이는 오래도록 대중의 인식은 물론 방송국 내의 서열과 제작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렴하고 확실하게 부릴 수 있는 공채 개그맨을 기수제로 뽑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무한도전> 이후 ‘예능은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국민MC 유재석의 모토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틀린 말이 됐다. 2000년대 중반 디지털 혁신에 힘입어 스튜디오 밖으로 수십 대의 카메라를 가져나갈 수 있게 되면서 예능은 다큐의 방법론을 끌어안았다. 리얼리티와 스토리텔링이란 새로운 화법을 갖게 되면서 제작진의 역량은 출연진의 이름값만큼이나 중요해졌고, 예능 작법은 오늘날 연애예능처럼 이른바 드라마에 가깝게 진화하기 이르렀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또 다른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상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시청자들이 등장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품게 되면서 예능은 단순히 웃고 즐기는 가벼운 콘텐츠가 아닌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정서적 콘텐츠로 발전해나갔다. 예능에서 말하는 재미란 이제 웃음이 전부가 아니다. 감동, 성장서사, 시대정신, 힐링, 친밀함, 정보의 효용, 선한 영향력 등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모든 것이 가능해진 예능은 블랙홀처럼 대중문화의 모든 요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적어도 10여 년간 지속된 팍스 관찰예능의 시대를 거치며 배우들은 예능을 통해 브랜딩을 새롭게 했고, 단군 이래 초유의 K-콘텐츠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플랫폼에 판매 및 투자, 제휴 및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IP를 노리는 비즈니스로 규모와 포부를 키웠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웃음을 사냥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췄고, 예능 선수들은 사라지거나 규격화된 부품으로써 남게 됐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예능 선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유튜브 채널을 팠다. 유명 예능인부터 무명 코미디언들까지 많은 이들이 최근 2~3년간 유튜브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기성 예능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김종국과 같은 인물이 오랜 방송 생활에서 겪은 회의를 토대로 진정성을 내세운 친근한 도전이 꽤나 흥미롭다. 단촐한 세팅부터 그간 몸담은 방송 환경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지향한다. 물론 구독자와 조회 수의 무게야 김종국이 아니면 다루기 힘들 정도지만, 이 작고 가벼운 시작은 이내 예능뿐 아니라 피트니스 업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면서 고착화된 예능 캐릭터를 리브랜딩하는 데 성공했다. 감히 예측하건데 <짐종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유튜브를 시작한 유재석에게 가장 큰 영감과 용기를 준 장면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수십 년간 기존 방송 제작 시스템에 길들여진 기성 예능인이 기존 활동과 병행하면서 방송의 틀을 스스로 벗어내고 자신만의 진정성으로 새로운 시대와 호흡하는 콘텐츠를 선보인 성공 사례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들은 진정성과 친밀함을 바탕으로 하는 까닭에 해당 아티스트의 본진이 되어 향후 관찰 예능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체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시청자와 쌓는 친밀감 측면에서 방송 프로그램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우새>의 김종국보다는 <짐종국>의 김종국이 훨씬 덜 작위적이고, 기안84의 오랜 팬이라면 <나 혼자 산다>도 좋지만 한혜진, 이시언 등과 유튜브 채널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더욱 진정성 있게 와 닿는 식이다. 이런 흐름은 결국 예능 선수라 불리던 연기자들도 자신의 왕국을 스스로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영역을 겸해야 한다는 결론과 마주하게 된다. 이미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유튜브를 도는 게 대세인 시절이다. 불러주는 방송이 없어 스스로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최근 상암동에 사옥까지 올린 송은이의 케이스는 이제 모두 앞에 열린 길이다.

그런 한편, 한국에서 광야는 성수동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예능의 장르 범주와 개념이 확대되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 코미디의 몰락이다. 방송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기도 전에 유튜브란 황무지로 내몰린 젊은 코미디언들은 자신의 터전을 알아서 개간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PD와 작가의 심사가 존재하는 방송국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상을 천착하는 기획력, 뛰어난 연기력, 탁월한 캐릭터 설정 및 스토리텔링으로 시트콤은 어렵다는 방송가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넉아웃시켰다. 그리고 기존 예능 문법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스케치 코미디를 통해 자신들의 영역과 시대를 만들어냈다. 유튜브에서 꽃을 피운 스케치 코미디나 주현영을 필두로 한 <SNL코리아>의 웃음 코드는 개인기, 끼, 에너지레벨에 의존하던 기성 코미디와는 완전히 다른 재능이자 접근이다.

그중에서도 유튜브 콘텐츠 <피식쇼>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코미디다. 시작은 합정의 작은 사무실에서 했을지라도, 이 쇼의 등장은 한국 코미디의 부활, 아니 새로운 코미디의 시작을 알리는 ‘shout out’이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미국의 토크쇼를 키치하게 해석한 패러디나, ‘유튜브 인베이젼’, ‘부캐’가 아니라 ‘콩트’와의 헤어질 결심이다. 한 번 더 풀어서 설명하면 그간 한국 코미디의 정석이자 성문종합이었던 일본식 코미디와의 드디어 작별이다. 이들이 이 쇼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그간 한국 코미디 문법에선 없던 새로운 사조다. 방송사 공채 출신 코미디언 셋이서 늘 함께하지만 이들은 구심점이자 형님 역할을 하는 메인MC 체제라든지, 서로든, 게스트에게든 핀잔을 주거나 티격태격하면서 만드는 웃음이 없다. 한마디로 샌드백 역할 하는 동료 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콩트, 혹은 상황극이라 불리는 이 코미디 문법은 쉽고 직관적인 반응으로 웃음을 추구하다보니 끼와 외모, 에너지에 의존하는 웃음이 주를 이뤘다. 훗날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로 진화해서도 공격수와 샌드백, 혹은 게임용어를 빌려와 ‘탱커’ 등의 역할구분과 역학관계의 배경이 되었는데, 이 모두 일본의 예능 간사이 지방의 만자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코미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무한도전>의 ‘하와 수’나 <런닝맨>의 웃음 코드다.

그런 반면 <피식쇼>의 코미디는 리액션이 아니라 어울림이며, 문화를 향유하고 갖고 노는 유희다. 비단 영어를 써서가 아니라 문화적 소재를 개그 코드로 가져오는 방법론에 있어 미국 코미디 콘텐츠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이들은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에 대한 연구, 한국 힙합에 대한 애정, 미국 방송과 패션, 정치 등등 다양한 서브컬처와 관심사를 기반 삼아 문화적 맥락을 비틀고, 변주를 통해 웃음을 만드는 지금까지 우리 땅엔 존재하지 않던 스타일의 코미디를 선보인다.

피식쇼>의 코미디를 즐기기 위해선 이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거나 노출이 된 대중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간다. 고감도의 문화적 향유 위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기자들이 앙상블을 이루는 코미디극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세스 로건, 티나 페이를 위시한 미국 SNL 작가 출신 연기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주드 아패토우로 대표되는 미국 코미디 영화의 중흥기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자신들의 왕국과 세계관을 탄탄하게 다져가고 있다. 이런 특성상 모든 대중을 다 품을 순 없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건 또 아니다. 바로 이 부분이 <피식쇼>가 소화해낸 미국식 코미디 콘텐츠의 현지화다. 끼와 에너지를 배경으로 하던 선배 세대 코미디와는 완벽한 결별이다.

흔히 전성시대라 말하는 ‘부캐’ 캐릭터 플레이와도 조금 다르다. 스스로 코미디언이자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집단이 만든 세계관은 단순한 코스프레에 머물지 않고 광야에 왕국을 세우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스스로 왕국을 짓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그 안에서 그들의 세계를 다져왔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성공한 많은 코미디언들이 일상 관찰이나 몰카 등 일명 스케치 코미디, 숏폼 드라마 타이즈에 여전히 몰두하는 사이, <피식쇼>는 <한사랑 산악회> 등 메가 히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계속해 미드폼 콘텐츠로 새로운 시도를 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광야에서 돌아온 이들은 방송국에서 지키지 못한 한국 코미디를 되살리는 걸 너머 대중을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들이 다른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서 익숙한 예능 활동을 시작한다면 어려움이 따를 것이 뻔하다. 그러나 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인간 이용주, 김민수, 정재형이 아닌 <피식쇼> 호스트의 태도로 일관하며 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식 마지막 멘트를 차용한 수상소감을 선보였다. “왕은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는 또다른 레저드 레지 밀러의 명언을 실천한 이들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문법과 태도의 코미디가 이 땅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틱톡, 유튜브, 피식대학, M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