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어려움을 겪는 진짜 이유를 아는가? 김태호 PD가 떠난 후 이어받은 제작진의 역량이나 멤버 역량 때문이 아니다. 리얼버라이어티식의 캐릭터쇼에 대한 환상이 빚은 결과다. 김태호 PD가 유산슬로 대박을 내고, 이후 ‘싹쓰리’, ‘환불원정대’ 등의 음악예능을 펼쳤을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 또한 다인 체제의 고정된 캐릭터쇼 여부다. 음악 예능에 특히 강한 김태호 PD나 현재의 <놀면 뭐하니?>나 모두 <무한도전>에서 그 원형을 가져왔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시스템이 아닌 특집의 스토리텔링만 떼어내 가져왔고, 유재석만 남은 <놀면 뭐하니?>는 올드보이들까지 합류시키며 본격적으로 <무한도전>의 향수를 재현하고자 했다.

<무한도전>이 선보인 리얼버라이어티는 기존 방송의 틀과 한계, 개념을 뒤흔들었다. 대본이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의 재미, 방송과 실제 친분을 개입시킨 관계망을 바탕으로 당시 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보여주지 못한 진정성, 시청자들과 함께 쌓는 정서적 유대, 성장서사라는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예능이 단순 웃기는 콘텐츠라는 패러다임을 뒤엎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위 ‘리얼’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가운데 서는 큰형님격 MC가 지휘자가 되고, 샌드백 역할을 하는 멤버와 공격수 역할을 하는 멤버가 정해져서 치고받는다. 남녀혼성일 경우 러브라인을 활용하는 등 콩트에서 넘어온 웃음 공식이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고정된 예능 멤버들이 펼치는 캐릭터쇼는 설정부터 작동방식까지 인위적인 경우가 많다보니 초기 출연자들이 친밀감을 높이는 1차적인 성장까지는 어찌저찌 가더라도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 데는 대부분 실패를 겪었다. 그런 사이 관찰예능, 웹예능 시대를 거치며 리얼을 전시하는 방식은 더욱 고도화되고 자연스러워지면서 캐릭터쇼를 근간으로 성장서사를 담는 리얼버라이어티는 도태됐다.

이처럼 주말 간판 예능 <놀면 뭐하니?>가 리얼버라이어티를 추구하며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시점에서 MBC 예능국은 또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쇼를 발표했다. 제작발표회에서 스스로 제2의 <무한도전>임을 언급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는 조세호, 최시원, 이용진, 주우재, 유병재 등이 별다른 설정도 틀도 없이 서로 물고 뜯고 정신없는 관계망으로 펼치는 리얼버라이어티 시절 그대로의 캐릭터쇼를 표방한다.

<무한도전>이 평균 이하를 내세웠다면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는 MC 꿈나무들의 성장 서사를 바탕으로 삼고,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명분하에 엉뚱하고 때로는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무용한 일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점점 친해지며 하나가 되는 캐릭터쇼의 묘미를 거듭해 강조한다.

2화까지 방영된 지금, 아마도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리한’ ‘무모한’ 도전 시절을 참고자료로 삼고 <무한도전>이 자리를 잡아온 동선을 복기하는 듯하다. 스튜디오 토크를 통해 티격태격하며 캐릭터를 잡아가고, 엉덩이로 풍선 터트리기, 허벅지 씨름 등 무용한 일에 진심을 다하며 웃음을 사냥하고자 한다. 차승원의 삽질에 대한 오마주인지, 무려 30분가량 추성훈의 허벅지 씨름을 봐야 했고, 전현무의 장악력을 내심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제목에서부터 안 하던 짓을 한다는 콘셉트를 내세웠는데 어디선가 본 예능을 펼친다는 데 있다. 멤버들의 싸움 순위나 메인MC자리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개인기 공개, 추성훈과의 힘 싸움, 퀴즈, 몸개그 대결, 면접 설정 등 익숙한 게임과 상황들이 이어진다. 남창희, 이윤석, 한민관, 조정치, 김대호 아나운서 등등을 동원한 추성훈과의 허벅지 씨름 대결과 방식 등은 모두 예능에서 많이 해오던 ‘짓’이다.

평균이하가 모여 무언 갈 이뤄가는 성장서사를 기반으로 한 <무도>식 리얼버라이어티가 가능하려면 신선한 조합이 필수다. 시청자들에게 인간적 매력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배우들, 일반인이 예능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이유 스토리텔링이 자유로운 도화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김동전>의 조세호와 주우재, <바퀴달린입>의 이용진과 조세호, <놀면 뭐하니?>, <전참시>에서 보여준 유병재 등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는 너무나 익숙한 예능선수들의 조합이다.

한편에선 KBS2 <홍김동전>을 리얼버라이어티의 성공 사례로 보기도 한다. 시청률은 낮지만 화제성은 높다는 이유로 웹상에서 큰 인기를 끈 영상클립을 예로 든다. 그러나 제일 높은 조회수가 터진 영상의 주인공은 이수지이며 기존 MC진의 역량과 큰 관계가 없다. <홍김동전>의 스토리라인이나 배경을 전혀 몰라도 웃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과 매주 호흡하며 생물처럼 진화하는 <무도>식 리얼버라이어티를 변형 없이 다시 꺼내들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청자들은 매주 제각각의 속도로 업데이트되는 긴 호흡의 성장서사를 볼 여유와 이유가 없다. 재밌는 부분만 잘라 보는 세대다. 과거 리얼버라이어티의 날것이 무언가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린 서사는 즉각적인 효능감을 중시하고 시즌제에 익숙한 오늘날 예능 트렌드와는 좀 동떨어진 재미코드다.

리얼버라이어티 방식 자체가 용도폐기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도>방식의 성장 서사, 낮고 하찮은 이들이 성취를 이뤄가는 스토리라인과 설정이란 천편일률적인 접근을 넘어선, 즉 <무도>의 그림자를 벗어난 변화가 필요하다. 복고든 레트로 무드든, 참고든 다 좋은데 이미 어려움을 겪고 사라진 예능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때와는 다른 지금만의 전략이 요구된다.

현재 우리 예능은 엄청난 변혁의 시기다. 피식대학을 위시한 웹예능에서 활약하는 코미디언들은 콩트에서 드디어 벗어난 코미디 형식과 감성으로 한국 코미디의 부활과 대약진을 이루고 있다. OTT가 활성화됨에 따라 생존 서바이벌 콘텐츠들이 고도화되고 있다. 김태호 PD는 유튜버들을 활용한 예능을 비롯해 기존 방송과 트렌디한 웹예능을 접목하는 실험을 <놀면 뭐하니?>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예능 탑티어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나영석 사단은 방송 프로덕션 차원에서 웹예능을 실험하는 차원을 넘어 방 안에서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스트리밍 콘텐츠에 대한 도전에 나섰다. 아예 스텝들만으로, 즉 연예인 없이 크리에이터의 역할만으로 수익과 재미를 만드는 방식으로까지 실험을 이어나가고 있고, 반응이 좋다.

이처럼 예능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계속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나아가고 있는 이때, 빈번히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에 전성기를 마무리한 성장서사를 기반으로 캐릭터쇼를 펼치는 리얼버라이어티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대는 전략이 아닌 과거회귀일 뿐이다. <무한도전>에 대한 향수, 그리고 캐릭터쇼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레트로 무드가 아닌 아쉬운 학습효과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