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의 숏폼 복고, ‘무도’보단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게 문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우리 제작진하고 애초에 이 프로그램 할 때부터 그런 얘기 많이 했거든요. 이게 어느 정도 <무한도전>처럼 딱 고정적인 멤버화는 힘들다 하더라도 패밀리십은 구축이 되야겠다. <무한도전> 멤버들 그러면 한 번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해서 이번엔 좀 적극적으로 나서봤어요. 시청자 여러분께서 오리지널 멤버, 했던 멤버들의 조합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시다 하더라도 사실 개인의 각자의 선택이잖아요. 이건 우리가 또 존중을 해야 돼요. 그래서 다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다 모일 수가 없었고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은 MSG워너비 프로젝트가 끝난 후 아침 일찍 음식점에서 정준하, 하하, 조세호, 광희가 모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무한도전> 이야기를 꺼냈다. 말 그대로 조심스러웠다. “오늘 얘기를 하면서 상당히 저희들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뭔가 <놀면 뭐하니?>의 매력을 가지고 보시는 시청자들도 많이 있거든. 그래서 보시는 분들 가운데는 또 <놀면 뭐하니?>가 아니라 <무한도전>을 한다는 건가? 라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무한도전>은 하기가 힘들어요. 멤버 구성이 일단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무한도전>이든 <놀면 뭐하니?>든 저희는 목표가 하나 아닙니까.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 근데 <무한도전>처럼 멤버화를 한다라기보다는 되시는 분들 우선으로 뭔가 프로그램을 저희가 한번 구성을 해볼려고 해요.”

그 후 <놀면 뭐하니?>는 확실히 변화했다. 88서울올림픽의 향수를 끌어와 올해 도쿄올림픽에 나와 주목받은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가 나와 <무한도전> 시절을 연상케 하는 탁구 대결을 벌였고, ‘유본부장’이 등장해 하는 인터뷰 상황극에 이어, 보도본부에 갑자기 앵커 자리에 유재석과 정준하, 하하를 앉혀 땀을 뻘뻘 흘리게 만드는 몰래카메라를 선보였다. 이 몰래카메라에 출연한 정준하, 하하, 신봉선, 미주는 이후 거의 준 고정멤버가 되어 계속 새로운 코너들에 출연했다.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을 연상시키는 퀴즈 코너를 <장학퀴즈> 패러디로 시전하고, ‘유대감댁 노비 대잔치’ 콘셉트로 화제가 되고 있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패러디한 ‘스트릿 노비 파이터’의 상황극 코미디를 선보인다.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해 럭비 국가대표팀과 럭비장에서 벌이는 오징어 게임을 하더니 다음에는 갑자기 실제 집처럼 꾸며놓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각자 자신의 사연이 담긴 보물을 가져와 숨겨놓고 찾기, ‘재석스5’라는 제목으로 도둑 분장을 한 후 진품 찾기 게임을 하고, 갑자기 소리 내지 않고 라면 끓여 먹는 게임을 한다. 그러더니 이젠 아이유와 악동뮤지션이 함께 부른 ‘낙하’를 패러디한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확실히 <놀면 뭐하니?>하고는 다르다. <놀면 뭐하니?>는 부캐 설정으로 들어온 좀 더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지만, ‘+’를 붙인 이후 <놀면 뭐하니?>는 한 회에도 여러 코너가 맥락 없이 이어질 정도로 호흡이 짧아졌다. 부캐란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그 캐릭터 이름이 각인될 정도로 어느 정도의 일관된 스토리가 이어져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 짧은 코너들에 등장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부캐라고 부르기 어렵다. 실제로 <놀면 뭐하니?+>는 굳이 부캐를 강조하지 않았다(유니버스를 그려 넣고 이번에 등장할 부캐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연출이 없다).
그렇다고 유재석이 애초에 말했듯이 이걸 <무한도전>의 재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무한도전>은 그 멤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케미들로 인해 특유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정준하와 하하가 있다고 해도 새로운 멤버인 신봉선과 미주와의 결합은 새로운 색깔을 만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무한도전> 역시 <놀면 뭐하니?>처럼 가끔 짧은 단발성 이벤트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김태호 PD 특유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기획되곤 했었다. 하지만 최근 몇 회 동안 <놀면 뭐하니?>는 프로젝트 개념이 희석됐다. 대신 짧은 코너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건 최근 흔히 말하는 ‘숏폼’ 형식을 보여주는 걸까.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짧은 ‘숏폼’ 콘텐츠들은 이제 점점 예능의 중요한 형식으로 등장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가 보여주고 있는 건 숏폼이 가진 특유의 도발적인 시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과거 코미디 시절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무한도전>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와요>나 <유머 일번지> 같은 콩트 코미디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버라이어티 코미디를 섞은 느낌이다.
그래서 웃음도 보다 원초적이다. 정준하를 샌드백 삼아 바보로 몰아가는 웃음은 물론 <무한도전> 시절에도 늘 존재했지만 그 원형은 <웃으면 복이 와요> 시절의 슬랩스틱에서부터 이어져왔던 것들이다. 신봉선의 옛 증명사진을 계속 들이밀며 하는 외모개그도 <개그콘서트>에서 늘 해왔던 것이지만(이는 대중의 비판에 직면해 나중에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개그도 과거 <좋았군 좋았어> 시절이나 <웃으면 복이 와요> 때부터 늘 있던 방식이다.

특히 도둑 콘셉트로 세트로 꾸며진 집에 몰래 들어와 60데시빌을 넘기지 않게 주의하며 라면을 끓여먹는 방식의 웃음은 실제로 <웃으면 복이 와요>나 이주일, 이상해, 서영춘이 했던 시절의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과연 이건 복고 혹은 숏폼일까. 아니면 그저 과거로의 퇴행일까. 물론 코미디도 돌고 도는 것이지만, 시대에 따라 웃음에 대한 감수성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놀면 뭐하니?+>는 이제 시대가 원초적인 웃음으로의 회귀를 요구한다고 보는 걸까. <개그콘서트>가 왜 갖가지 비판에 직면하다 결국 폐지됐는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현재 <놀면 뭐하니?+>는 ‘기획’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때 그 때 임기웅변식의 짧은 코너들이 별다른 맥락 없이 채워지고 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가 그간 굵직하게 만들어 낸 세계관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방식은 그 유니버스를 한없이 축소시키고 소소하게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소소한 코너들로 채워지고 있고, 그래서 매회 어떤 일관된 흐름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굳이 토요일을 기다려 프로그램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매 코너가 즉각적인 재미를 줄진 몰라도 방향성이 없으면 지리멸렬해진다. 시청자들의 일관된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 것.

물론 이건 변화의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도 어느 순간 어떤 하나의 맥락을 찾아내 새로운 색깔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최근 한 달 간 이어진 <놀면 뭐하니?+>의 흐름은 당장의 웃음을 채우기 위해 과거(그것도 <웃으면 복이 와요> 시절)로까지 회귀한 느낌이다. 유재석이 변화를 얘기하며 <무한도전>의 향수와 <놀면 뭐하니?>의 유니버스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할까를 고민했지만 이래서는 <무한도전>도 <놀면 뭐하나?>도 아닌 그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기획 없이 소소한 코너들로 채워나가다가는 <무한도전> 팬들도 또 <놀면 뭐하니?> 팬들도 이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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