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 너머로 나아가는 ‘놀면 뭐하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추억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확실한 키워드다.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자. <놀면 뭐하니?>는 예능이란 개념, 장르, 위상, 작법을 바꾼 김태호 PD가 <무한도전> 이후 웹 콘텐츠와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존 지상파 예능 제작 환경과 개념에 도전한 콘텐츠 실험이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다 트로트 열풍에 올라타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부캐’라는 작법을 대중적 코드로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경쟁 대상이자 도전 과제였던 유튜브 예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다른 예능 창작자들의 레퍼런스가 됐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설정부터 설명까지 <무도>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란 점을 강조했다. 기대와 비교가 큰 부담이자 기획의 제약을 만들 수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련되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유재석과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벗어나야 할 그림자가 아니라 기획의 보고이자 영광스런 추억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부캐는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고, 솔직히 반복되는 감이 없잖아 있으나 결과를 놓고 봤을 때 ‘무도 가요제’와 ‘식스맨 프로젝트’를 차용한 노스탤지어 콘텐츠는 반복을 넘어서 진일보를 해내고 있다.

지난주 ‘무한상사 10주년 특집’으로 기획된 ‘유본부장’은 본격적으로 다룬 <무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한상사를 퇴직하고 신생회사의 본부장이 됐다는 설정 하에 세계관을 연결시키고, 자료화면으로 그 시절을 틈틈이 회상했다. 그간 다양한 음악 특집으로 그 시절의 향수를 발굴해오고, <무도>에 대한 그리움을 종종 언급하기는 했으나 ‘유본부장’은 가장 직접적으로 세계관을 연결한 사례다. 뿐만 아니라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의 캐릭터쇼를 만들어내고 전설이 됐지만, 그 다음을 위해 현재의 설정을 패러디를 통해 은유한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차용한 설정은 함께했던 캐릭터쇼에서 혼자가 된 현재의 작법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새로운 멤버를 찾기 위해 다양한 인물을 열어놓고 채용하는 방식은 예능판 전체를 놓고 벌였던 ‘식스맨 특집’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니까 <놀면 뭐하니?>는 성장 서사가 어느 정도 진행 된 이후 둔해지는 캐릭터쇼의 단점을 회피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집단 MC체제의 해체를 택했다. 그러면서 좋은 성과도 내고 있지만 단 한 가지 <무도>에 대한 깊은 갈증을 남겼다.

그래서 ‘무한상사’의 서사를 이끌어갔던 주요 인물인 정 과장(정준하)의 등장은 반가움과 동시에 그리움이었다. <무도>의 멤버 중 현재 가장 방송 활동이 뜸한 출연자지만, 마치 매주 함께 방송한 것 같은 찰떡같은 호흡으로 콩트를 이끌어가며 전설인 이유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특히나 후배나 일반인 게스트가 아니라 오랜 전우와 함께 촬영할 때 부담감 내려놓고 즐기는 유재석의 리액션은 콩트 자체의 재미를 넘어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무도>의 캐릭터쇼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실제와 방송 콘셉트가 혼재한 맥락에서 오는 개그 앙상블이 웃음의 원천이자 정서적 이입의 단초다. 매니저 없이 활동하는 정준하에게 JTBC로부터 걸려온 전화 이후, 기회를 포착한 유재석과 이에 바로 반응한 정준하의 생생한 호흡은 달라진 공기를 만들어냈다. 상황극도 즉흥적이다. 계산을 두고 벌이는 시퀀스는 한창 때의 <무도>가 생각날 만큼 기시감이 있었다. 특히나 오랜 전우와 간만에 호흡을 맞추는 데도 불구하고 부담감 내려놓고 즐기는 유재석의 리액션은 샘솟는 웃음을 넘어서 <무도>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처럼 <놀면 뭐하니?>는 ‘추억’을 큰 뿌리로 삼고 있지만, 마냥 과거 회귀적인 콘텐츠라고 볼 수 없다. 유재석과 정준하의 콩트는 <무도>의 향수를 자극할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현실 관계와 방송 설정을 비틀면서 요즘에도 여전히 먹히는 경쟁력을 보여줬다. 안주하기 보다는 2000년대 중반 <무도>가 예능의 새장을 열었듯, <무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전개를 계속 펼쳐가면서 유튜브와 웹 예능의 전성시대에 일조하고 있다. 재능 있는 젊은 코미디언들이 캐릭터 플레이를 통해 자신들의 무대를 개척하는데 <놀면 뭐하니?>의 ‘부캐’ 콘셉트는 매력적인 참고 자료다. 팀을 이끌던 대기업의 유 부장이 직원 하나 없는 스타트업의 유 본부장이 됐다는 것이야말로 <놀면 뭐하니?>의 지향이자 현재를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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