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갈수록 크게 느껴지는 김태호 PD의 빈자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갈수록 김태호 PD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물론 박창훈 PD 체제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지만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방식들은 과연 이를 모색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지난주 방영된 ‘만나상회’ 특집은 방영 전부터 유사 예능 프로그램들과 변별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실제로 이렇게 외지 마을에서 가게를 여는 콘셉트는 나영석 사단의 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윤식당>, <강식당>을 거쳐 최근에는 유호진 PD의 <어쩌다 사장2>로까지 이어져온 것들이다. 물론 그래서 <놀면 뭐하니?>가 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것은 <놀면 뭐하니?>는 물론이고 그 연결고리를 갖는 <무한도전>을 통해 김태호 PD가 일관되게 구축해온 ‘독보적인 세계’의 이미지가 깨져버리는 느낌을 줘서다. <무한도전> 시절부터 무한 예능 포맷 도전을 해오기도 했던 김태호 PD의 그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로움’이었다. 그런데 김태호 PD가 빠져나간 후 <놀면 뭐하니?>는 그 가장 중요한 자산을 버리고 있다. 과연 김태호 PD가 있었어도 이런 ‘만나 상회’ 같은 유사 콘셉트를 하도록 내버려뒀을까.

이번 주 방영된 ‘MBTI’ 특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무한도전> 시절부터 스튜디오에서 지인들을 불러 갖가지 게임을 하는 <동거동락> 콘셉트의 반복이다. 물론 MBTI라는 소재는 흥미롭다. 16가지의 ‘성격유형’을 담은 MBTI는 최근 방송에서도 출연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단골로 질문에 오르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I형(내향형)과 E형(외향형)으로 나누어 팀을 꾸리고 각각의 팀이 얼마나 다른 성향을 보여주는가를 비교하는 건 잘만 다루면 충분히 재미는 물론 의미도 담아낼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MBTI’를 소재로 내세운 이 아이템에, 너무나 전형적인 ‘꼬리잡기’ 게임을 하고, 나아가 아이돌들의 댄스 신고식(?)을 넣는 방식은 유재석이 너무 많이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해서 닳고 닳은 식상함을 먼저 만든다. I형과 E형으로 팀을 나눈 후, 서로 자신들이 속한 성격형이 더 좋다며 티격태격 싸우는 대목은 그리 새롭진 않다. 팀 대결에서 항상 전조처럼 깔리곤 하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치고받는 말들이 더 세고 자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이런 양상은 김태호 PD가 빠지고, 공식적으로 유재석을 위시해 정준하, 하하, 신봉선, 이미주가 하나의 팀을 꾸리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던 일이다. 결국 프로그램은 출연자 조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팀 색깔은 여성 출연자로 신봉선과 이미주가 들어왔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과거 <무한도전> 시절의 색깔 그대로다.

여기에는 김태호 PD가 빠짐으로서 온전히 유재석 중심으로 꾸려진 <놀면 뭐하니?>의 한계가 드러난다. 출연자들 대부분도 어딘가 유재석과 타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이들로 채워지는 것도 시청자들로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MBTI 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한 침착맨 이말년은 최근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출연해 유재석과의 재미있는 케미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그 침착맨이 <놀면 뭐하니?>에서는 별반 주목되지 않는다. 여럿이 나오기도 해서 그렇지만 ‘꼬리잡기’ 같은 게임이 침착맨하고 어울릴 리가 없다.

사실 ‘MBTI’ 특집에서 가장 흥미로울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재미삼아 보고 넘어가야할 성격유형 검사가 서로 다른 성향으로 ‘갈라치기’ 함으로써 치고받는 그 광경을 통해 작금의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실제 MBTI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이러한 ‘갈라치기’가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상대방과 서로 싸우는 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풍자적으로 담겨졌다면 어땠을까.

물론 다음 주에도 이어질 ‘MBTI’ 특집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최근 <놀면 뭐하니?>가 보여주는 행보에 대한 아쉬움은 적지 않다. 특히 지나치게 유재석 1인 취향으로만 흘러가고 채워지면서, 이를 통제하곤 했던 김태호 PD 같은 존재의 부재는 <놀면 뭐하니?>가 갈수록 평이해지는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부터 이어왔던 MBC 예능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놀면 뭐하니?>는 그간의 팬들에게는 너무나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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