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곽튜브·‘순정파이터’ 샌드백, 학폭 생존자들의 서사 응원 받는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해외 나가서 한국인이 없는 데서 지내고 싶다.”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스타 여행 전문 크리에이터 곽튜브는 그런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하필이면 한국인이 없는 데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학 시절부터 겪었던 학교폭력 때문이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려 했던 곽튜브도 결국 그 때가 다시 떠오르는 듯 눈물을 참지 못했다. “동급생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들에게 항상 밑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근데 중학교 가도 똑같았는데 매점에서 빵 사오라든지, 이동수업 때 책 자기 거 옮겨 놓으라고 한다든지, 체육복 빌려가고 교과서 빌려가고 안 돌려주고, 컴퍼스로 등을 찌르고 ‘얘봐라’ 하면서 찌르고 제가 아파하는 거 보면서 웃고 그래서 중3때 고등학교 갈 때는 아무도 모르는 고등학교로 가야겠다 해서 혼자 멀리 떨어진 실업계를 갔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초반까지는 해방이었다고 했다. 반에서 1등을 했고 애들도 자신을 재밌어 했다는 것. 하지만 반에 있던 누가 그 중학교 때 애한테 “쟤 별명이 걸베이였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결국 자퇴한다고 했더니 이런 사실을 몰랐던 부모님이 반대했고 그래서 가출도 했다고 했다. 집에 콕 박혀 대화도 없이 있다 보니 대인기피증도 심해져서 결국 어머니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맞았다”고 했고 어머니는 바로 허락해주셨다고 했다. 곽튜브를 눈물 나게 한 건 어머니가 오히려 미안해 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어렵게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려 그 때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지만, 곽튜브가 그 후에 어떤 인생반전을 보여줬는지 이제 대중들은 알고 있다. 한때는 자살까지 검색하곤 했지만, 그 후에는 유학을 꿈꿨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제르바이젠 대사관 취업을 하게 됐을 때 외교부에서 어머니에게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화환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그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나 보여준 가장 큰 반전이었고, 가해자들에 대한 가장 큰 복수가 아니었을까.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곽튜브가 들려준 ‘생존자들의 서사’는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고 많은 대중들의 응원과 지지를 얻고 있다.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그 어려움 속에서 생존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많은 피해자들에게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돼지의 왕>, <약한 영웅>에 이어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된 <더 글로리>로 인해 한껏 높아졌다. “연진아 나 지금 너무 신나” 같은 대사가 밈이 되어 유행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최근 이러한 ‘생존자들의 서사’를 가진 출연자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독 눈에 띤다. SBS 예능 <순정파이터>에 출연한 상남자 파이터 샌드백 손근호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샌드백이라는 닉네임에 여러 의미가 있다며 먼저 “샌드백을 다 터트려버려서” 그렇게 부른다고 말했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샌드백처럼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가 격투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UFC를 접하면서였고 운동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샌드백은 실력 검증 경기에서도 남다른 근성과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프로 선수 장익환 코치를 상대로 태클을 시도해 넘겨버리고, 괜찮은 타격감과 그라운드 실력 또한 보여준 것. 맞아도 계속 앞으로 나가는 샌드백의 경기는 그 모습 자체가 인생반전을 보여주는 서사처럼 보였다. 큰 박수를 받은 샌드백은 ‘전사의 심장’으로 인정받았고 추성훈은 더 이상 별명이 “샌드백”이 아니라 이제 “주먹”이라고 말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샌드백은 결국 토너먼트 8강 진출자를 가리는 하위권 도전자들의 데스매치에서 해운대 말벅지와 리틀 추성훈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8강 진출을 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더 글로리>에서 가해자는 버젓이 살아가고 대신 피해자만 힘겨운 나날을 버텨내는 그 상황은 우리네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단지 학교폭력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그 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 그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진상규명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그래서 더 고통 받고 있지 않은가. 물론 학교폭력 같은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교육 제도 전반의 문제를 바꿔나가야 하는 게 맞지만, 이를 극복해낸 생존자들의 서사가 주는 위로와 희망도 필요하다.

“그 힘든 순간을 본인의 결단으로 끊어낸 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좋은 선택을 한 거기 때문에 자책하지 말고, 혼자 누워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저를 만들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지금 하는 대로 누워서 계속 생각을 많이 하고 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네 잘못은 아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곽튜브가 건넨 위로로 많은 생존자들이 용기를 얻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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