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원작보다 강렬해진 저주 같은 엔딩

[엔터미디어=정덕현] “내일 모레 아침 조회시간. 개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릴 거야. 나는 다른 돼지새끼들처럼 절대 그 개새끼들한테 내 살을 내주지 않을 거거든. 날 떠올릴 때마다 무서워서 벌벌 떨게 만들 거야. 평생 잊을만하면 개새끼들 꿈에 나타나서 흡혈귀처럼 목에 내 이빨을 박아버릴 거야. 그 새끼들 그렇게 고통스럽게 평생 살게 만드는 거야. 내가 개새끼들에게 내리는 저주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이 종영했다. 하지만 극중 철이(최현진)가 남긴 그 말은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그건 이 땅의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내리는 저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제 몸을 던져 저들에게 잊히지 않는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겠다는 것. 그는 결국 학교 옥상 난간 위에 섰고, 그저 겁만 주려 쇼를 하고 내려오려 했지만 그를 밀어버린 종석(심현서)으로 인해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그저 겁만 주려했던 철이를 종석이 밀어 죽게 만든 건, 저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진짜 저주를 내리고 싶어서다. 그런 생각을 하고 가짜 유서를 남기기 전 종석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상을 본다. 그는 마치 철이가 맞이할 죽음을 예수의 죽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끔찍한 학교폭력을 끝내고 싶었으니 말이다.

연상호 감독의 원작 애니메이션은 나이 들어 파산한 황경민이 종석을 찾아와 그 때 그 사건의 진실을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걸 밝히고 철이가 떨어져 죽은 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끝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돼지의 왕>은 과거 학창시절의 끔찍했던 학교폭력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오지만, 현재의 경민(김동욱)과 종석(김성규)의 서사를 당시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복수하는 연쇄살인범과 이를 막으려는 형사의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처절하기까지 한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에, 드라마라는 장르에 맞춰진 폭발력 있는 극적 구성이 이런 현재 서사의 변환으로 가능해졌다. 사실 원작은 문제작이라고 할 만큼 충분히 날선 메시지가 돋보이는 명작이지만, 그대로 드라마화 됐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작품이다. 이야기가 너무 어둡고, 무엇보다 피해자가 끝까지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음으로써 시청자들도 견디기 힘든 작품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경민의 복수극으로 그려지면서 기묘한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졌다. 철이는 태생적으로 저들은 개로 태어나 사랑받으며 살아갈 운명이고, 자신들은 돼지로 태어나 제 살점을 저들에게 내줄 운명이라며 그걸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려 했던 인물이다. “너희들 잘 들어. 너희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 지금을 떠올리면 그 때가 좋았었는데 참 재밌었는데 그렇게 추억할 일 절대 없을 거다. 왜냐면 이제부터 내가 아주 끔찍한 중학교 시절을 만들어줄 거니까.”

그렇게 저들에게 외쳤던 철이가 종석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과연 저들은 철이의 말처럼 자신의 죽음을 저주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은 아프게도 그렇지 않다. 그 때의 가해자들은 더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고 그 때의 일들을 잘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경민은 그 사실을 알고는 분노한다. 철이가 하지 못했던 저주를 자신이 직접 내리려 한다.

종석은 형사로서 경민의 연쇄살인을 막으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살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딜레마에 빠진다. 게다가 경민은 종석이 과거 철이를 죽인 그 진실을 밝히려 한다. 경민의 절망에서 비롯된 엇나간 선택들과, 이를 막으려 하지만 자신 또한 저 개들처럼 과거를 잊고 살아가려 하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게 된 종석의 절망이 겹쳐지면서 드라마는 파국을 만들어낸다.

원작과는 조금 달라진 엔딩이지만 드라마 <돼지의 왕>의 엔딩은 그래서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가 펼쳐졌고, 결국 그 복수를 감행한 이들과 과거의 진실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던 이들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학교폭력이 어떤 부조리한 사회의 위계 시스템 속에서 탄생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계속 고통 받지만 가해자들은 그걸 심지어 추억처럼 여기며 여전히 그 폭력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가를 <돼지의 왕>은 절규하듯 풀어낸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철이와, 세월이 흘러 그 진실을 다시 마주함으로써 그 옆에 함께 나란히 눕게 된 종석과 경민의 모습은 오래도록 강렬한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 벌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이 향후 어떤 미래가 되어 돌아올 것인가를 예고하듯이. 그 비극을 <돼지의 왕>은 저 가해자들에게 저주를 남기듯 끔찍하고 선명하게 지워지지 않는 살풍경으로 그려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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