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복수서사, 카타르시스와 아슬아슬함 사이(‘돼지의 왕’)

[엔터미디어=정덕현] 학교폭력에 전하는 경고인가 아니면 이를 명분 삼은 폭력일 뿐인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에서 황경민(김동욱)의 복수는 살벌하다. 중학시절 자신을 성추행하고, 교실 바닥을 기게 만들었던 안정희(최광제)가 그 첫 번째 복수의 대상. 황경민은 그를 약물로 쓰러지게 한 후 벽에 매달아 놓고 칼로 동맥을 피해 온 몸에 상처를 냄으로써 고통을 최대화시켰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음경을 잘라 살해했다.

<돼지의 왕>은 이 끔찍한 보복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물론 모자이크를 하기는 했지만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바닥은 보기에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는 시청자들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중학교 시절 너무나 잔인한 학교 폭력을 황경민에게 해왔던 안정희다. 그래서인지 그 폭력이 잔인하긴 하지만 통쾌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을 통해 과거 황경민이 당한 학교폭력과 현재 파산의 위기 속에서 복수에 나선 황경민의 연쇄살인을 병치해 놓고 있다. 시청자들로서는 안정희나 당시 반장이자 이들 일진을 이끌었던 강민(오민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현재 그 때의 일을 지나간 일로 치부하며 ‘추억’처럼 말하며 존경받는 의사인 양 살아가는 모습은 황경민이나 그를 추적하는 정종석(김성규) 형사가 갖는 분노에 공감하게 만든다.

황경민의 끔찍한 복수극은 <돼지의 왕>이 리메이크를 통해 원작 웹툰에는 없던 설정을 넣은 부분이다. 이 복수극이 들어가면서 <돼지의 왕>은 원작과 달리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물의 성격을 갖게 됐다. 이것은 원작이 학교폭력만큼,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계급의 문제에 더 집중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물론 이러한 계급문제는 드라마가 후반으로 가면서 좀 더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건 19금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끔찍한 황경민의 복수극을 카타르시스의 관점으로만 본다는 건 제아무리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라도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자칫 가해자의 관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드라마 리메이크로서 <돼지의 왕>이 가진 색다른 관전 포인트는 사실상 이 복수극을 전제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강력계 형사로 설정된 정종석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는 형사로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황경민을 막아야 하는 역할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황경민의 복수에 공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중학교 시절 황경민이 당했던 학교 폭력에 대항했던 거의 유일한 같은 반 친구였다. 그러니 형사라는 직업과 친구라는 입장 사이에서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돼지의 왕>은 그래서 복수극이 가진 카타르시스와 가해자 서사라는 아슬아슬한 지점을, 정종석이라는 양가감정을 가진 인물을 통해 절묘하게 풀어내고 있다. 살인현장에 황경민이 정종석에게 “함께 해야지”라고 메시지를 남기며 끌어당기지만, 정종석은 갈등한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황경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건을 추적하며 만나게 되는 강민 같은 인물의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 앞에서는 황경민의 입장에 순간 동조하기도 하는 것.

이 팽팽한 양가감정의 균형점이야말로 <돼지의 왕> 리메이크가 찾아낸 절묘한 지점이다. 이 균형점이 있어 가해자들에게 갖는 분노의 감정들이 어떤 폭력의 카타르시스로 풀려나오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라는 이성적 개입을 갖게 된다. 물론 폭력에 얽힌 계급문제를 원작은 훨씬 더 밀도 있게 그렸지만, 드라마는 이를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면서도 어떤 균형점을 잡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이 <돼지의 왕>의 아슬아슬함에 빠져드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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