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오컬트도 아니고 재난도 아닌 애매함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느 날 한 마을에 나타난 저주받은 귀불. 봉인으로 불상의 눈을 가렸던 천이 풀리면서 진양군 전체에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검은 비가 내리고 까마귀떼가 공격하더니 눈이 하얗게 돌아 미쳐버린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지옥에 빠져 살육을 벌인다.

연상호 감독이 대본을 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는 tvN 드라마 <방법>에 등장했던 귀불에 대한 또 하나의 스핀오프 같은 작품이다.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오컬트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드라마는 이를 좀비물이나 재난 장르 같은 형태로 그려낸다. 즉 저주 받은 귀불에 의해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나 끝내 이 귀불의 저주를 막는 방식들은 오컬트의 성격을 가지지만, 변한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죽고 죽이는 양상은 전형적인 좀비물과 재난 장르의 문법을 따라간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오컬트 특유의 오싹한 공포를 기대한 시청자들에게는 좀비물과 재난 장르의 틀거리가 너무 뻔해서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같은 작품을 통해 좀비들의 확산을 감염병 확산의 재난처럼 풀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간 연상호 감독이 너무 비슷한 작품들을 연달아 만들어내면서 그것조차 하나의 클리셰처럼 다가오게 된 점이다.

귀불에 의해 마을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이로 인해 감염자들과 미감염자들 사이가 나뉘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들도 이제는 익숙하다. 곽용주(곽동연) 같은 악역이나 진양군수 권종수(박호산) 같은 인물도 너무 전형적이고 하다못해 괴짜 고고학자 정기훈(구교환)과 그의 아내이자 문양 해독가인 이수진(신현빈)도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다. 특히 아이를 잃어 절망감에 빠진 정기훈과 이수진의 인물설정은 마지막에 어떤 스토리가 등장할 것인가까지 익숙하게 유추하게 만든다.

익숙한 장르적 클리셰들이 가득해지면서 <괴이>가 끌고 가는 힘은 스토리라기보다는 잔인한 폭력장면들이다. 여러 차례 칼로 난자를 한다거나, 머리를 해머로 내리치고, 날카로운 나무 끝으로 사람을 찌르는 광경들이 반복되고, 제 머리를 총으로 쏴 날려버리는 자살이나 눈이 돈 엄마와 아들이 서로 칼부림을 하는 장면 같은 폭력들이 등장한다.

워낙 뻔한 클리셰 속에 들어와 있어서인지 구교환처럼 <D.P.> 같은 작품으로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배우조차 그 매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신현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저주에 눈 먼 사람들의 폭력 양상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신현빈이 연기하는 이수진 캐릭터는 역할이 별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스토리가 있는 건 파출소장 한석희(김지영)와 그 아들 한도경(남다름)의 서사인데 이조차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최근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이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큰 성취를 가져온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워낙 초창기의 치열함이 담겨진 <돼지의 왕>이었기에 여기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한 리메이크가 시너지를 낼 수 있었지만, <괴이>는 그런 치열함보다는 장르적 재미에 더 빠져 있는 듯하다. 그것도 연상호 감독이 지금껏 열었던 세계들에 스스로 빠져 있는 듯한.

편당 30분이 넘지 않는 분량의 6부작이고 19금에 맞춰진 자극적인 폭력 묘사가 들어있어 금세 시간은 흐르지만 <괴이>는 새로움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드라마다. 스토리도, 장르적 요소들도, 또 인물이나 그들이 하는 대사들까지 너무나 클리셰들이 많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결합으로 놀라운 작품들을 내놓곤 하는 연상호 감독이지만 그래서인지 놀랄 만큼 진부한 <괴이>는 괴이한 드라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