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월드의 미래를 만들어갈 새로운 실타래, ‘뿅뿅 지구오락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은 현재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거의 유일한 TV예능이다. 멤버들이 어떤 몰랐던 매력을 발산하고 어떻게 친밀한 관계망을 만들며 이야기를 쌓아갈지 앞으로 기대가 된다. 참고로 여성 출연자들이 주가 되는 여성 예능이라는 점은 기대에 가산되지 않았다. 여성 출연자들로 구성하긴 했지만 <뿅뿅 지구오락실>은 여성 서사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별보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세대다. 세대 차이 극복은 나영석 사단의 새로운 미션인 듯하며 이번 예능의 주요 볼거리다.

그런데 겉만 보면 <신서유기>의 재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여행과 게임을 접목한 것부터 음식을 건 게임, 기상미션, 게임 종목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신서유기>에서 가져왔다. 의도적으로 키치하게 그리는 세계관 또한 그렇다. 지리산 자락에 도착한 여섯 요괴의 용볼 쟁탈전을 달나라 토끼 잡기 위한 4명의 지구 용사로 갈아 끼운 수준이다. 비주얼을 담당하면서 반전 매력의 승부욕과 강단을 갖춘 막내라는 존재, 에너지와 센스로 분위기를 잡아가는 이영지 등 멤버 구성의 면면에 있어서도 <신서유기>의 원형인 <1박2일> 시즌1의 이승기와 엠씨몽이 연상된다. 만약 오리지널리티 없는 제작진이 런칭했다면 표절을 넘어선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게임 개발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면 <지구오락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기존 TV예능의 문법을 재료로 웹예능 시대의 대중들에게 소구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서유기>를 그냥 가져왔다고 할 수 없는 영민한 포인트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가장 큰 이슈인 캐스팅부터 보자. 여성이란 성별보다 유튜브에서 더 활발한 끼를 보여주었거나 방송 인지도보다는 1020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훨씬 유명한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데시벨과 괄괄함으로 가장 비중 있게 비춰지는 이영지의 경우, 예능 끼는 엠넷에서부터 인증을 받은 정도지만 기존 TV예능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서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다. 에너지레벨이 통제 밖으로 튀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는 주도적으로 날라 다니지만 방송에서는 여전히 사이드킥에 머물며 리액션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하는 이은지도 마찬가지다.

<지구오락실>과 <신서유기>가 가장 크게 차이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남자를 여자로 바꾼 게 포인트가 아니다. 예능계의 뿌리 깊은 라인 문화와 예능 선수를 배제하고, 메인MC를 구심점으로 삼는 포맷, 샌드백 역할도 없앴다. 제작진도 출연진도 한 번도 서로 함께한 적 없는 인물들로 호흡을 맞추고, 진행은 ‘영석이 형’(나영석 PD)과 제작진이 맡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을 잠시 미룬다. 멤버들 사이의 관계망을 바탕 삼는 전개와 에피소드로 친밀감을 높이는 기존의 일반적인 리얼 버라이어티, 여행 예능의 방식 대신 카메라를 독식하는 1인칭 유튜브 콘텐츠처럼 각자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먼저 펼친다.

게임 예능은 식상하지만 각자의 재능과 캐릭터를 단기간 잡는 데 탁월한 방식이다. 이런 부분을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점상 2회에 방영했어야 하는 기상미션도 무려 통편집해서 뒤로 미뤄버리고 멤버들이 끼와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이어갔다. 그 덕분에 이은지와 이영지는 각자의 캐릭터는 물론 기존 TV예능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생한 에너지레벨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외모부터 큰 매력을 가진 막내 안유진은 단숨에 시선을 잡아끌면서 아이돌 팬덤을 넘어선 인지도를 확보하며 대형 스타로 나아갈 교두보를 마련했다.

오마이걸의 미미의 경우, 올해의 히트작이 될 만한 발견이다. 물론, 아이돌 팬들에겐 알려져 있고 JTBC <아는 형님>에서 끼를 발산한 적은 있으나 박명수도 작년 말 자신의 채널 <활명수>에서 처음 봤을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이돌 멤버는 아니다. 하지만 레트로 음악 퀴즈를 통해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시청자들 앞에서 건강한 웃음 속에 선보이면서 어쩌면 이 예능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이 레트로 코드야말로 영민한 제작진의 의도가 담긴 담보다. 기존 나영석 사단의 시청자들이자 기존 TV예능에 익숙한 3050세대 시청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반가운 장치로써 다소 ‘아이들’이 낯설고 정신없더라도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이들을 지켜봐야 할 이유와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영석 사단은 다가오는 웹예능의 시대에 대해 그 누구보다 궁금해 했고 앞장서 도전해왔다. TV 편성표 안에 머무르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웹예능과의 공존을 시도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라면 끓이기와 같은 비슷한 실험을 반복하는 동안 유튜브, OTT, 카카오TV 등 새로운 생태계로 넘어와 고군분투하던 예능 제작진들은 결국 예능의 다음 시대를 웹에서 열어젖혔다. 이런 맥락 하에서 <지구오락실>은 다급해진 나영석 사단의 본격 도전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구오락실>은 나영석 사단과 출연진의 세대차를 진행의 동력으로 삼는다. Z세대 예능 신예들은 제작진이 준비해온 카드가 소진될 정도로 끊임없이 게임을 내놓으라고 채근하고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시키지 않은 무대를 가지며 진정으로 촬영을 즐긴다. 대형 예능에 첫 출연하는 출연자들이 도전하는 자세로 긴장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일 텐데 오히려 나영석 PD가 이제 갓 스무 살, 서른 살이 된 출연자들에게 몇 년 차 PD인지 확인받고, ‘평생가자’는 건배사를 날린다. 나영석 PD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은 단순히 진행자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일종의 공감의 매개로서 그동안 훨씬 많은 경험과 엄청난 성취를 이뤘지만 왠지 눈치를 보게 되고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되묻게 되는 기성세대 입장을 예능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지구오락실>은 스스로에게 질문은 던졌지만 <신서유기>의 변주나 스핀오프가 아닌 새로운 IP로 런칭했다는 것은 꽤나 미래지향적인, 사실상 자신감의 표현이다. 함께 연출하는 박현용 PD에게 인조인간 캐릭터를 부여하고 등장 비중을 높이면서 <스페인 하숙>에서부터 이어진 후임 양성 또한 충실하게 이어가며 다음을 준비 중이다. 게임 예능의 특성상 시청률이 대박 수준을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지구오락실>의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영민한 계산과 전략으로 인해 출연진에게 호기심과 호감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이 다음부터는 나영석 사단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개구지면서도 따스한 나영석 월드의 미래를 만들어갈 새로운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