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일일극에 둥지 틀고 싶다면 이휘향·나영희에게 한 수 배워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C <비밀의 집>과 KBS <황금가면>의 주인공은 젊은 배우들보다 중견 여배우들 쪽이다. 두 드라마 모두 큰 기업을 이끄는 함숙진(이승연)과 차화영(나영희), 고미숙(이휘향)이 이야기의 패를 쥐고 흔드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 음모도 이쪽에서 짜고, 웃음 벨도 이쪽에서 터트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비밀의 집>과 <황금가면>에서 느껴지는 재미의 온도 차는 좀 크다. 다만 그건 두 드라마의 이야기가 지닌 재미가 천지차이라서가 아니다. 두 드라마 모두 나름 일일극 특유의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그걸 풀어가는 방식 역시 흥미롭다. 허나 <황금가면>이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시청자를 정신없이 만드는 반면, <비밀의 집>은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극을 끌어가는 배우들의 능력 차에 있다. <비밀의 집>의 이승연은 확실히 존재감은 있다. 그녀의 룩은 여전히 궁금하고 멋지다. 얼마 전 입은 청록색 재킷 역시 이승연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느낌이다. 허나 이승연의 매력은 딱 거기까지. 이승연이 연기하는 함숙진은 아무 말이 없을 때 가장 빛난다. 하지만 이승연의 단조로운 대사 톤이나 짐작 가능한 표정 연기는 함숙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중심인물이 힘이 없어지니 중요한 사건들은 단조로워진다. 감정을 감추거나,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때도 이승연의 연기는 답답하다. 오히려 홈쇼핑 채널에서의 이승연이 일일드라마에서보다 더 생기가 넘칠 정도.

반면 <비밀의 집>에서 함숙진 스타일이 있다면 <황금가면>에는 고미숙 스타일이 있다. 이휘향은 일찌감치 막장극의 남자주인공 엄마 롤로 자리를 바꿔오기는 했다. 물론 최근 일일극이나 주말극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황금가면>의 고미숙처럼 화려하고 스타일 좋은 캐릭터에서 그녀는 가장 빛난다. <황금가면>에서 그녀가 입고 나오는 의상이나 화려한 붉은 가발은 이휘향이기에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휘향은 스타일이 전부가 아니다. 화통한 연기부터 은근히 귀여운 연기까지 다재다능한 감정선 역시 화려한 패션처럼 소화한다.

반면 <황금가면>에서 나영희가 연기하는 차화영은 <비밀의 집>의 함숙진과 성격 면에서 더 가까운 부분이 있다. 언뜻 보기에 냉정하고 속내를 알 수 없다. 나영희는 무미한 듯 보여도 특유의 우아한 톤으로 차화영의 대사를 읊는다. 하지만 그 담백한 톤에 섬세하게 파도치는 감정의 결이 담겨 있다. 그 결과 묘한 긴장과 불안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

차화영과 함숙진 모두 과거의 꿍꿍이가 있었고 그게 드러나는 것이 두 드라마의 재미다. 당연히 나영희처럼 섬세한 연기 속에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줘야, 사이다 장면에서 속시원한 즐거움 있다. 또 <황금가면>에서 나영희는 몇 차례 무표정한 얼굴에서 사악한 악녀로 변하는 표정 연기를 보여줬다. 순식간에 다른 인격의 얼굴로 변하는 연기에서 이 배우의 오랜 짬이 드러난다.

1990년대 스타 이승연은 일일극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고 싶은 눈치지만 일일극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다. 생활연기의 짬에서 나오는 현실감, 감정폭발 장면의 아우라는 물론, 때론 망가지며 웃기는 모습까지. 짧은 시간 안에서 매운 맛의 연기들이 필요하다. 멋짐을 내려놓고 그 빈자리를 망가짐과 여유와 연륜으로 채워야 시청자들과 공감의 코드가 생긴다.

이승연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비밀의 집>의 연기 교본은 <황금가면>의 나영희와 이휘향에게 그 해답이 있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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