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년 2순위’ MBC 일일드라마가 관심 받는 방법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웃어라 동해야> 이후로 KBS 일일연속극은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같은 시간대의 MBC 드라마가 흥하고 있진 않다. KBS 일일연속극은 그냥 틀어놓는 드라마, MBC쪽은 경쟁 드라마가 지루해지면 잠시 채널을 돌리는 작품으로 자리가 잡힌 것 같다.

최근 방송하는 KBS 일일연속극 <당신뿐이야>를 보노라면 80년대 주간지에 실리던 시시한 숨은그림찾기를 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드라마에는 모든 자극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출생의 비밀, 기업 내부의 암투, 낳은 엄마와 길러준 엄마, 형제 사이의 갈등까지. 또 KBS 일일연속극 특유의 주인공들 역시 포진해 있다. 씩씩하면서도 여린 남자주인공, 언제나 모든 걸 보듬어주는 여자주인공, 잔소리 많지만 마음 따뜻한 시어머니, 억척스럽지만 결국 천사표인 어머니와 듬직하나 눈치 없는 아버지, 남자주인공을 괴롭히는 잘생겼지만 야비한 조연 남까지.

게다가 일일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가족끼리의 훈훈한 에피소드 역시 종종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지루한데, 그 이유는 아마 나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이 이미 일일드라마의 패턴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뿐이야>는 일일드라마의 문법을 충분히 따르지만 시청자들보다 한수 아래의 반전과 속도와 감동을 보여주니 정답이 홀랑 드러나는 숨은그림찾기처럼 여겨지는 것.

<당신뿐이야>를 틀어놓고 멍하게 텔레비전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콩과 팥이 만나 사랑해서 메주를 낳는 드라마를 만들어도 KBS는 고정 시청률이 나올 테고 MBC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야 할 터. 아예 이 시간에 모험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전형적인 일일드라마의 패턴은 아니지만 그 요소요소를 가지고 50부작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황당하지만 옹골찬 스토리로 끌어가는 B급 드라마 말이다. 그래서 몇 편의 가상 B급 일일드라마의 얼개를 짜 보았다.

◆울지마, 큰눈아

유기견을 데려와서 온 가족이 사랑으로 보살피는 훈훈한 홈드라마. 서울의 대가족 박씨 집안. 비 오는 토요일 오후에 박씨 집안의 막내딸이 퀭한 눈의 불쌍한 치와와 한 마리를 데려오면서 드라마는 시작한다. 박씨 가족은 그 치와와에게 큰눈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처럼 대해준다. 하지만 큰눈이는 정서불안의 강아지로 박씨 집안의 사랑에 보답하기는커녕 사고뭉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막내딸의 새 옷 물어뜯기, 주인집 할머니의 정강이 깨물기, 큰딸의 명품 핸드백에 배변, 심지어 가출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가족들은 그때마다 큰눈이를 사랑으로 대하고 큰눈이 역시 점점 사랑스러운 애완견으로 변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딸이 재벌가 M기업 회장집의 정원사인 잘생긴 청년과 만나면서 큰눈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바로 M기업 사모님이 기르던 애완견이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눈이 맞아 낳은 자식이 큰눈이였던 것. 사모님은 눈도 못 뜬 큰눈이를 매몰차게 내버리라 했지만 마음 착한 정원사는 차마 그 말을 따르지 못하고 정원 구석에 작은 개집을 만들고 분유를 타 먹이며 큰눈이를 몰래 기른다.

하지만 결국 사모님은 큰눈이를 정원에서 발견, 정원사에게 일언반구 없이 어린 큰눈이를 내쫓고만 것. 박씨 가족은 큰눈이와 자식이 그리워 병든 큰눈이 엄마 스텔라를 만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를 막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M 재벌가 사모님 역시 만만치 않다. 그 사이 큰눈이 아버지가 실은 족보 있는 개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더불어 큰눈이는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 강아지 한 마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새아버지는 카멜레온

잠적한 새아버지의 진실을 파헤치는 본격 추리 일일연속극. 중소기업의 오너인 인철. 인철은 결혼 후 3년만에 부인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십여 년을 살아온 남자다. 한편 남편과 사별 후에 홀로 분식집 ‘김밥타령’을 운영하며 두 남매를 키운 말순이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절로 노래가 나올 만큼 맛있는 김밥으로 유명한 ‘김밥타령’이 텔레비전에 맛집 분식집으로 방영되면서 말순은 떼돈을 번다. 그 후 말순은 ‘김밥타령’ 체인점을 내고 사업가의 길을 걷다가 소개로 사업가 인철을 만난다. 비록 잘 생긴 얼굴은 아니나 인철의 믿음직한 말솜씨에 반한 말순은 재혼을 결심한다.

그 후 말순은 인철의 사업자금을 대고 인철의 기업 역시 탄탄대로를 걷는 것으로 가족들은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철의 중소기업이 부도처리 될지 모른다는 소식이 말순에게 전해진다. 게다가 그날 이후 인철은 가족과 연락을 끊고서 깜깜무소식이다. ‘김밥타령’ 사업마저 말아먹을 처지에 놓인 말순은 앓아눕고 말순의 자녀 철이와 미애는 새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던 중 서랍에서 다이어리 한 권을 발견한다. 다이어리 전화번호부에 적힌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밝혀지는 새아버지의 진실에 남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카멜레온처럼 능수능란한 인철의 거짓말과 사기에 놀아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

과연 새아버지 인철의 본 모습은 무엇인가? 결혼 후 3년만에 죽었다던 부인은 실은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사건인가? 매일매일 끝나기 3분 전에 새아버지의 숨겨진 가면 속 얼굴이 드러나고 철이와 미애가 경악의 표정을 짓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

◆2012 보통사람들

이 드라마는 B급은 아니고 리메이크 일일연속극쯤 되겠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방영된 이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 황정순을 중심으로 대가족이 손을 맞잡고 함께 웃으며 걷는 오프닝타이틀이 전부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30년을 훌쩍 뛰어넘어 만들어진다면 어떤 드라마가 탄생할지 궁금하다. 그런데 드라마 속 인물들이 아닌 2012년의 진짜 보통사람들은 누구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걸까? 어쩌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길 기대하며 혼자서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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