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캐릭터 종합선물세트, 숨통 트이는 ‘가우스전자’에 담긴 풍자

[엔터미디어=정덕현] “신세기 K트렌드의 시작 가우스전자. 그 가우스전자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대표적인 친일파 윤완용의 노비였던 가우스전자의 창업주 천해요. 해방직후 윤완용에게서 훔친 땅문서를 기반으로 1948년 가우스전자의 전신인 가우스상회를 설립. 1955년에는 카라멜 밀수로 목돈을 마련 가우스상회를 한 단계 발전시켰죠. 1972년 우리의 천억대 회장님은 가업을 물려받아 전자기기 사업으로 눈을 돌리셨고 동두천 PX의 시바스 리갈을 빼돌려 만든 이윤을 토대로 지금의 가우스전자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우스전자가 여러분과 함께 한 50년 소중한 그 시간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50주년 기념 콜라보 작품, 시바가우스리갈 굿즈를 대발매합니다.”

시즌 오리지널 시리즈 <가우스전자>는 이상식(곽동연)이 유튜브에 올린 가우스전자에 대한 소개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 짤막한 소개 영상은 물론 허구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딘가 우리네 산업화 시대에 여러 풍경들이 겹쳐진다. 우리네 현대사에서 자본의 흐름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와 지금의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의 생태계를 만들었는가가 풍자적으로 그려져 있어서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건 짤막한 영상 속에서도 윤완용이니 천해요, 천억대 같은 패러디 풍자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이들 캐릭터와 더불어, 친일파, 카라멜 밀수, 전자기기 사업, 시바스 리갈 등등이 공명하며 <가우스전자>만의 독특한 풍자적 세계가 그려진다. 특히 이 작품은 이러한 풍자적 요소들을 캐릭터 안에 꾹꾹 눌러 표현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경지를 보여준다.

격무에도 책상을 지키며 웃음을 잃지 않는 위장병 부장(허정도)은 사실 배틀 그라운드에 빠져 있고, 회사 내 이익을 위해 늘 힘쓰는 기성남 차장(백현진)은 커피믹스를 슬쩍 주머니에 챙기며, 자칭 ‘촉와와’라 불린다는 정확한 예측력과 판단력의 소유자 차와와 과장(전석찬)은 80%가 빠진 주식 그래프를 보고 앉아 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한다지만 표정 자체가 없는 성형미 과장(고우리)이나 아부를 극혐한다면서 기성남 차장의 핸드폰을 깨끗이 닦아 건네는 김문학 대리(백수장) 같은 가우스전자 마케팅 3부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저마다 한 방씩의 웃음의 코드들을 무기처럼 숨기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식은 물론 눈치도 전혀 없어 보이는 이상식과 그와 티격태격 티키타카를 만들어가는 상사이자 이웃인 차나래(고성희), 그리고 재벌2세 금수저지만 마케팅 3부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서민 체험을 하고 있는 백마탄(배현성)과 술 마시면 헐크처럼 괴력의 소유자로 돌변하는 건강해도 너무 건강해 문제인 건강미(강민아)가 만들어가는 로맨틱 코미디도 빼놓을 수 없다.

<가우스전자>는 이 코믹 캐릭터 종합선물세트가 매회 그려가는 빵빵 터트리는 웃음에 집중한다.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해서인지 <가우스전자>는 일단 캐릭터를 통한 웃음의 밀도가 높다. 첫 회부터 가우스전자를 디스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감사를 받게 된 이 팀이 이상식을 꽁꽁 묶어 놓자 이를 탈출하려다 이빨이 부러지고 퉁퉁 부운 입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코믹하게 전개되고, 2회에서는 재벌2세 금수저 백마탄이 진짜 낙하산을 타고 가우스전자에 첫 출근하고 건강미와 엮어지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렇게 빵빵 터지는 웃음 이면에 깔린 캐릭터를 통한 현실 공감이 느껴진다. 즉 이상식은 사회생활에 눈치가 없지만 어찌 보면 상식적인 말들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아 피해를 입는 캐릭터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회생활을 에둘러 끄집어낸다. 백마탄 같은 인물이 서민 코스프레를 하며 사내식당에서 진짜 금수저를 꺼내 먹는 우스꽝스런 모습은 태생적인 빈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부자와 서민 생활의 부딪침을 극적으로 끌어낸다. 그런 백마탄의 정체를 모른 채 이상하게도 그가 하는 말에 고개를 조아리게 되는 마케팅 3부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조직생활에서 우리가 드러내진 않아도 경험해온 많은 일들에 대한 공감이 코믹한 과장으로 담겨져 있다.

<가우스전자>에는 ‘시바가우스리갈’을 갖고 욕설을 뒤틀어 만들어내는 말장난 개그나 입술이 퉁퉁 부어 발음이 엇나가 “십분만 기다려줘”가 “XX년 기다려 더”로 잘못 찍히는 식의 원초적인 웃음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러한 원초적인 웃음 속에는 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고, 무엇보다 과장된 코믹 설정 속에서도 그 이면에 깔린 오피스 생활에서의 현실 공감이 느껴진다. 그 공감대를 이 드라마는 캐릭터 안에 심어 놓았다.

최근 벌어진 ‘윤석열차’ 논란처럼 어쩌다 지금은 풍자나 패러디조차 정치적 논리에 의해 혐오라 덧씌워져 핍박받는 시대가 됐다. 굳이 ‘표현의 자유’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중들에게 적어도 웃음이라는 틀 안에서 최소한의 여유 정도는 허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우스전자>에 담겨진 풍자적인 웃음이 주는 숨통이 유독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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