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이 충준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의 상징인 세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태어나 결국 이 세상을 끝낼 것이다.”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에는 아스달에 내려오는 오랜 예언을 밑그림으로 세워두고 있다. 그 세 아이들은 다름 아닌 은섬(이준기)과 탄야(신세경) 그리고 사야(이준기)다.

아고족을 이끄는 재림 이나이신기 은섬이 바로 칼이고, 아사신의 재림으로 아스달의 대제관인 탄야가 방울이며, 은섬의 쌍둥이로 어려서 타곤(장동건)에게 아스달로 끌려가 총군장이 되고 왕위 계승자로 왕비 태알하(김옥빈)의 아들 아록왕자(신서우)와 경쟁하게 된 사야가 바로 거울이다.

단군신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은 <아라문의 검>에서는 그 신화의 상징적 의미를 국가 같은 문명의 탄생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로 해석한 면이 있다. 전사 은섬의 칼이 군사력 같은 실질적인 무력을 상징한다면, 대제관 탄야의 방울은 혼돈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이끌어주는 종교를 상징한다. 그리고 은섬의 배냇벗이지만 아스달에서 자라나 총군장이 된 사야의 거울은 아직 본격적인 서사가 등장하진 않았지만 다른 위치에서 살았지만 이들을 연결시키는 동질감 같은 걸 상징하지 않을까 싶다.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세력을 키워왔던 은섬과 탄야 그리고 사야는 이제 서로 뒤얽히면서 자신들에게 내려진 신탁의 소임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로지 재림 이나이신기로서 아고족을 이끌어 아스달을 해방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삼던 은섬은 아라문 헤슬라가 남긴 ‘느티나무가 갈라져 나의 칼이 드러날 때 아라문이 사명을 알리라’라는 신탁을 실제로 경험한다. 열손(정석용)이 준 철검을 들고 싸우던 중 번개가 내리쳐 느티나무가 갈라지고 철검에도 떨어진 것.

대장장이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번개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신성성을 부여받는 존재로 해석되곤 한다. 번개 맞은 나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것이 하늘과 땅이 이어져 만들어진 신물의 상징이 더해져 있어서다. 즉 은섬은 이 신화적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이나이신기로서 타곤을 물리치고 아스달을 해방하는 애초 목표에서 이제 아스달을 포함한 모든 부족들을 이끄는 재림 아라문의 사명을 갖게 된다.

탄야는 아스달의 대제관으로서, 타곤이 보랏빛 피를 가진 인간과는 다른 종족 이그트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신의 축복’이라 말함으로써 군중들의 마음을 돌리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 역시 아스달의 노예로 끌려와 타곤과 대항하기 위해 종교의 힘을 키워왔던 것이지만 이제는 좀 더 큰 사명을 짊어지려 한다. 이그트를 천한 종족으로 여겨 배척하던 아스달 군중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그것이다.

탄야는 전쟁의 신인 아라문 해슬라가 보랏빛 피를 가진 이그트였다는 사실에 혼돈에 빠진 신전의 신도들을 이런 말로 설득한다. “전쟁과 승리의 신이 어찌하여 이그트로 오시고 이방인으로 오셨느냐? 지난 오랜 세월 이그트는 가장 낮은 곳에서 멸시받던 존재들이고 모든 이방인은 아스달에서 탄압 당하고 배척당했다. 이 혼돈 속에 답이 보이느냐?” 그러면서 가장 멸시하던 자, 가장 낮게 있던 자, 가장 배척하던 자, 가장 낯선 자를 따르고 받들고 우러르라고 말한다.

사야 역시 아고족들에게 발견되어 은섬으로 오인됨으로써 ‘가짜 이나이신기’ 행세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희생’을 겪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죽이려던 잎생(이해운)의 칼을 묘니타가 나서 대신 맞고 쓰러지는 사건이 그것이다. 그 사건에 충격을 받은 사야는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약바치 채은(하승리)에게 희생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아낌없는 위함”이라고 말하는 채은에게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복종”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며 그는 새삼 깨닫는다. 이나이신기라는 존재가 “다들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존재”였다는 걸.

그건 은섬과 다른 삶을 살아온 사야에게는 질투심을 부추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는 가짜 이나이신기로서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삶과 생각, 가치 같은 것들을 반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울의 역할이 아니겠나. 사야는 아무래도 이종족들이 이제 부족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큰 산 중의 하나인 서로가 달라도 받아들이는 그 동질감의 문제를 풀어내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목에 걸고 있는 거울처럼 얼굴이 비춰지는 목걸이가 그 단서가 아닐까.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의 상징인 세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태어나 결국 이 세상을 끝낼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예언은 그래서 은섬과 탄야 그리고 사야가, 각자 갖고 있는 하늘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무력과 낮은 자와 낯선 자를 이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종교 그리고 타인과의 이질감이 아닌 동질감을 찾아내는 지적 능력이 하나로 뭉쳐져 사명을 다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부족에서 국가로 가는 문명의 과정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민족 포용의 문제가 이들 세 사람의 중대한 사명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건 수천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라문의 검>이 지금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문명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가를 제시하며 충분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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