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서 슈퍼히어로 그리고 서부극까지 달리는 K드라마

[엔터미디어=정덕현] 일제강점기의 경성과 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독립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액션 활극은 어딘가 서부극의 그것이다. 말을 타고 장총과 권총을 쏘며, 서로 마주 본 채 속사 대결을 벌이는 광경도 등장한다. 서부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수송되는 돈을 털려는 강도들과 이를 지키려는 일본군 사이의 치열한 추격전도 빠지지 않는다. 이른바 1960년대 시작되어 197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사라졌던 만주웨스턴이라는 장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 칼의 소리(이하 도적)>는 바로 이 만주웨스턴을 본격적으로 가져온 액션 활극이다. 1920년대 간도 땅에 희망을 갖고 모여든 조선인들은 그곳에 정착해 살아가려 하지만 약탈을 일삼는 마적단들과 독립군을 색출하기 위해 들어온 일본군들 사이에서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 그곳을 거점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거사를 준비하는 독립군들까지 더해지면서 이 상황은 저 서부극에 등장하는 개척시대의 무법지대를 방불케 한다.

머슴이었다가 갑오개혁으로 면천된 이윤(김남길)은 주인집 도련님인 이광일(이현욱)과 친구가 되고 그를 따라 일본 군인이 되지만, 조선인을 학살하는 토벌을 경험하면서 절망에 빠진다. 그는 그 토벌에 살해된 이들의 죽음을 사죄하기 위해 간도에 자리한 조선인 마을의 지주인 최충수(유재명)를 찾아가 죽으려 하지만 전후사정을 알게 된 최충수에 의해 거듭나게 되고 그곳의 도적단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대장이 된다.

서부극이 그러하듯이, 이윤이 이끄는 도적단의 인물들은 마치 마카로니웨스턴에 등장할 법한 저마다의 능력을 갖고 있다. 의병장이었던 최충수는 활과 칼을 쓰고, 설악산 포수 출신 강산군(김도윤)은 저격수이며, 남사당패에서 곡예를 했던 초랭이(이재균)는 쌍도끼를 날리고, 장사의 기운이 느껴지는 금수(차엽)는 맨몸의 완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윤이 이끄는 도적단은 일본군 소좌가 되어 독립군 토벌에 나선 이광일(이현욱)과 맞서게 되고, 여기에 살인청부업을 하는 총잡이 언년이(이호정)가 끼어들면서 대결은 삼각구도의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만주웨스턴 장르가 그러하듯이 사실 <도적>은 복잡한 스토리보다는 장쾌하고 호쾌한 액션 활극의 맛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만주웨스턴 자체가 서부극을 우리 식으로 해석해낸 지점이 하나의 재미 요소인데, 서부극에 활과 칼을 쓰는 최충수 같은 인물이 들어간다거나, 남사당패 초랭이가 보여주는 날랜 액션이 담기는 그런 로컬 색깔을 담은 차별점들이 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든다.

무엇보다 <도적>은 액션을 보는 맛이 있는 드라마다. 간도 명정촌에서 벌어지는 일본군과 도적단이 맞서는 스펙터클한 액션부터, 간도선 부설자금 수송차량을 두고 벌이는 추격전,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같은 장면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김남길이 장총을 쏘는 장면은 여러모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정우성이 했던 액션과 겹쳐지고,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언년이 역할의 이호정의 액션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오락물로서는 서부극 특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만주웨스턴이 본래 그리곤 했던 ‘독립군 서사’는 때론 서부극이라는 오락물과 만나 어색해지는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전형적인 일제와의 대결구도는 다소 뻔한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도적>의 만듦새의 문제라기보다는 만주웨스턴이라는 장르 자체가 갖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에게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이를 접할 외국인들에게는 의외의 참신함을 줄 수도 있다. 미국의 정통 웨스턴 장르가 식상해질 때 마카로니웨스턴이 등장해 다시 서부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처럼,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 K콘텐츠가 선보이는 만주웨스턴은 분명 로컬 색깔이 얹어진 색다른 맛을 전하지 않을까. 최근 K드라마는 판타지에서부터 슈퍼히어로물은 물론이고 이제 서부극으로까지 그 장르적 비빔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도적>의 만주웨스턴은 이 관점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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