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의 과학수사가 마주한 편견과 관행의 벽(‘악의 마음’)

[엔터미디어=정덕현] “선을 넘으시는 것 같은데...”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동수사대 1계2팀 윤태구(김소진) 팀장은 범죄행동분석팀의 송하영(김남길)에게 계속해서 ‘선’을 넘지 말라 경고한다. 5살 아이의 토막살인사건 수사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한 송하영의 선의지만, 과학수사나 범죄행동분석, 즉 프로파일링 개념이 거의 없던 2000년대 초 그 선의는 ‘선을 넘는’ 불쾌한 행동으로 치부된다.

마치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오는 것처럼 느끼고, 사건 공유를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으로 본다. 범죄행동분석을 윤태구는 미래의 범죄자를 예방하기 위한 한가로운 소리로 여긴다. 또 수사대에서 이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라 특정 짓는 것에 대해 송하영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윤태구는 자신들의 담당형사들도 충분히 유능하다며 불쾌해한다. 이 프로파일링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는 윤태구로서는 송하영의 말이나 행동들이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결국 송하영이 화를 내자 “선 넘는 재주가 아주 탁월하시네요”라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상황들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범죄스릴러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든다. 그것은 바로 과학수사가 자리를 잡지 못했던 시절에 과거의 수사 방식이 만들어낸 편견과 관행의 벽을 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송하영이 강압에 의한 자백에 반기를 들며 과학수사를 통해 진범을 찾아낸 첫 번째 사건에서도 이 드라마가 더 집중해준 건 진범 잡기만큼 기존 형사들의 편견과 관행의 벽이었다. 관행처럼 굳어버린 강압수사의 표본처럼 그려진 동부경찰서 강력반 반장 박대웅(정만식) 역시 송하영의 과학수사를 선을 넘는 일로 여기며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송하영은 이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진범을 찾아냄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고 강압수사에 수감됐던 방기훈(오경주)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다.

국영수(진선규) 팀장에 의해 어쩌다 범죄행동분석팀이라는 게 만들어졌지만 이들 앞에는 여전히 그 팀을 바라보는 편견과 늘 해왔던 관행이라는 벽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들의 도움을 선 넘는 행위로 불쾌해하던 윤태구가 송하영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모티브가 흥미롭다. 그건 윤태구 역시 여성 팀장으로서 토막살인사건을 맡게 된 사실에 대해 남자 형사들로부터 차별적 시선을 받는 입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담배를 펴야지 뭐 같이 잡담도 나누고 수사도 공유하는 거지. 그런 맛이 없어..” 지나면서 남자 형사들이 툭 던지는 그 말은 윤태구 역시 여성 팀장으로서 남자 형사들이 공고히 쳐놓은 선을 넘는 입장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토막살인사건의 또 다른 신체 일부분이 발견된 여관에서 주인아주머니가 함부로 윤태구 팀장에게 “아가씨”라고 부르자 송하영이 정색하며 이를 바로잡는 장면은 중요하다. “아가씨 아니고 형사님입니다. 이 사건 담당 팀장님이에요.” 그 말 한 마디에 윤태구 팀장의 송하영을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적어도 차별적 시선이 없는 그의 말에서 송하영이라는 형사가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것.

사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등장하는 송하영 같은 프로파일러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일을 하고 있다. 토막살인사건 수사에 도움을 얻기 위해 그는 수감된 토막살인 범죄자를 찾아가 면담을 한다. 그런데 그 범죄자는 송하영에게 “눈동자가 텅 비었다”며 그 역시 자신 같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꺼낸다.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들의 마음을 읽어야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일.

하지만 그러한 난관과 더불어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낯선 당시의 형사들이 갖고 있는 공고한 편견과 관행이라는 선 또한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마주하고 있다. 드라마가 말하는 ‘악의 마음을 읽는 일’은 자칫 그 일을 하는 이들의 진정성이 담겨지지 않으면 자극적인 범죄수사물의 덫에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진정성을 이 드라마는 송하영이 신입에게 해주는 ‘장님 등불’ 이야기를 빌어 전한다. 왜 이 일을 하는 것이고, 이 일을 하는 진심이 무엇인가를.

“장님 등불 얘기 알아요? 어두운 밤길에 등불을 들고 걷는 시각장애인에게 물었어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들고 걷냐고. 왜 들고 걷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 등불을 보고 부딪쳐 넘어지지 말라고.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밝히는 거예요. 범죄를 맞닥뜨리는 일은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듭니다.”

시청자들은 송하영의 이 진정성을 등불삼아 이 끔찍한 범죄의 수사과정을 따라간다. 그래서 거기에는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과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겠다는 그 마음이 전하는 공감대가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송하영의 마음을 시청자들이 읽고 있기 때문에, 이 범죄수사물의 수사과정은 뭉클한 면이 있다. 그것은 또한 편견과 관행의 선을 넘어 과학수사라는 새로운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이 걸어간 고난의 길을 보여주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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