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수사로 범인 만들던 시대, 김남길에 거는 기대(‘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엔터미디어=정덕현] “하여튼 이 조폭 새끼들 근성은 절대 못 버리지. 욱해서 사고나 칠 줄 알았지. 머리가 나쁘니 수습은 안돼. 죗값은 치르기 싫고. 그런데도 저 새끼 말을 믿자는 거야?”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동부경찰서 강력반 반장 박대웅(정만식)은 관할지역에서 옷이 벗겨진 채 살해된 여성의 범인으로 그의 애인 방기훈(오경주)을 범인으로 확신한다.

박대웅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그날 살해된 여성과 방기훈이 다퉜고 그래서 한강에 갔다는 그의 알리바이가 누구에게도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과거 그가 조폭 출신이었고 그래서 범법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데 있어 보였다. 그는 좀 더 명확한 직접 증거를 찾자고 말하는 송하영(김남길)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런 새끼들 인간 아니야. 인간 아닌 새끼들은 매질이 제일 빠르고 쉬워.”

증거를 통해 범인을 찾는 게 아니라 때론 강압수사를 통해 범인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암울한 시대의 그림자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드라마의 전제로 제시된다. 결국 두드려 맞아 사실도 아닌 죄를 인정한 방기훈에게 박대웅은 심지어 세간을 공포에 몰아넣은 성폭행 살인범 ‘빨간 모자’ 사건의 범인으로까지 뒤집어씌우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강압수사가 진짜 범인을 잡지 못하고 또 무고한 이를 범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송하영은 다른 가능성의 여지를 열어두고 증거를 찾으려 수사를 계속한다. ‘빨간 모자’ 사건의 범인이 집집마다 가족구성원을 파악해 문가에 숫자로 표시를 해놨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배달원을 의심한다. 또 방기훈이 범인으로 지목된 살인사건에서도 여성의 집안에 미리 들어와 숨어 있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옷장 안을 살피던 중 발견한 지문의 감식을 요청한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아직까지 ‘프로파일링’이나 ‘과학수사’ 개념이 자리를 잡지 못했던 시대에 송하영의 이런 노력들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결국 방기훈은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고 이듬해 진짜 범인인 ‘빨간 모자’에 의해 또 다른 유사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해된 후 옷이 발가벗겨진 여성이 시체로 발견된 사건. 결국 무리한 강압수사가 어떤 또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는가를 이 드라마는 첫 회에 보여준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들이 주로 자극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왜 과학수사가 필요한가에 대한 공감에 더 방점을 뒀다. 이것은 이 작품이 가진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우리에게는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잘 알려진 권일용의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극화된 작품이다.

물론 드라마는 ‘창작된 이야기’로 ‘인물, 기관,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사전고지와 함께 시작되지만, 적어도 과학수사가 태동하던 시대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자극적이고 때론 엽기적인 사건들보다는 그 사건들을 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해가는 과정과 이를 실행해온 프로파일러들의 노력과 고충 등을 담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작품이 시청자들의 멱살을 쥐고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니라 보면 볼수록 저 강압수사가 갖는 문제를 인식하고 과학수사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됨으로써 저절로 송하영이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송하영만이 아니라 이 길에 함께 뛰어들 과학수사팀을 만들려는 국영수(진선규)와 투덜대면서도 그를 돕는 기수대장 허길표(김원해)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더해질 전망이다.

강압이 아닌 증거를 통한 범죄수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다루는 드라마가, 범죄스릴러가 주로 취하던 자극이 아닌 공감을 통한 몰입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범죄수사에서 증거가 주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듯,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서도 인물들에 대한 남다른 공감대가 주는 강력한 힘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겨서다. 그건 프로파일링이 범죄수사의 접근방식 자체를 바꾼 것처럼, 어쩌면 클리셰 가득한 범죄스릴러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드러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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