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서’, 임시완과 박용우의 공조가 주는 기대감

[엔터미디어=정덕현] “저 사람들 상대로 한 번이라도 이겨본 일 있으십니까? 한 번이라도 이겨본 적 있으시냐고요. 제가 여기 필요한 이유 모르겠다고 하셨죠? 아이 뭐 저는 깨끗하거나 양심 있는 놈 아니에요. 근데 이겨봤고요. 앞으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아는 놈입니다. 그게 제가 여기 필요한 이유구요. 저 같은 놈 만나는 건 자주 있는 기회 아니에요. 이기고 싶다면 또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전부를 잃고 싶지 않다면 저 이용하시죠. 더는 흔들리지 마시고요.”

MBC 금토드라마 <트레이서>에서 황동주(임시완)는 자신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조세5국을 맡게 된 오영(박용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 황동주는 조세 정의나 국세청 내부의 적폐청산 같은 공적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국세청 공무원이 되기 전 세금 먹튀 전문 회계사로 이름을 날렸던 자다. 그러던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국세청 공무원이 된 것. 거기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그가 국세청 조세5국에 들어오게 된 건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사적 복수의 화신이 된 것.

그래서 황동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궁극의 복수의 대상일 수 있는 인태준(손현주) 중앙지방국세청장에게도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황동주가 조세5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아버지와의 친분을 이용해 인태준에 접근하고, 본청 국세청장이 되고픈 그의 욕망을 건드려서다. 황동주는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조세5국에 들어온 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가 하는 첫 번째 작업은 인태준과 연결되어 있는 조세 각국의 국장들을 세금탈루자와 연관된 사건들을 풀어냄으로써 밀어내는 일이다. 장정일(전배수) 3국장과 안성식(윤세웅) 5국장이 동시에 밀려난다. 그건 인태준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한편으로는 황동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인사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 빈자리는 백승룡(박지일) 국세청장에 의해 남주지방청 노선주(김국희) 국장과 오영이 각각 차지하게 된다.

황동주는 오영에게 인태준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이용하라 하지만, 사실은 그가 오영을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영은 과거 국세청의 무리한 세무조사로 인해 벌어졌던 일가족 동반자살 사건에서 어린 서혜영(고아성)을 구해낸 인물이다. 그는 국세청의 인태준을 위시한 권력자들이 저질러온 범죄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고픈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정의감만으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황동주는 오영에게 강변한다. 자신처럼 깨끗하지도 또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고 오로지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그 복수극이자 정의에 필요하고 말한다. 왜 <트레이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자로 이런 인물을 세웠을까.

최근 들어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선이 아니라 악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생겼다. tvN <빈센조>가 그랬고, <악마판사>가 그랬다. 이들 드라마들은 ‘악은 악으로 응징한다’는 모토를 내세웠다. 이렇게 된 건 부정한 현실이 선한 마음 같은 순수함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대중들이 경험하고 있어서다. 대중들은 선이 이길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현실에 부딪치면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악을 무너뜨리는 존재로서 필요악을 세우고 있는 것.

황동주도 그런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그는 세꾸라지들(세금 탈루 범죄자들)은 물론이고 그들과 결탁된 국세청 내부의 권력자들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이 만만찮은 적폐세력들과의 대결에 닳고 닳은 황동주 같은 인물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그와 공조하는 오영이나 서혜영 같은 인물들도 중요한 건 사실이다. 이들이야말로 황동주 같은 필요악의 싸움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선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않아 오히려 더 신뢰감이 가는 황동주와 그가 대의로 삼는 오영, 서혜영과의 공조가 더 큰 기대감을 주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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