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빈센조’·‘모범택시’에 드리워진 정의 실종 시대의 그림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른바 다크히어로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이제 드라마 속에서 어딘가 선한 주인공은 주목받기 힘든 시대가 된 걸까. 스스로 악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악당들과 대적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저 악당들의 방식이다. 새로 시작한 tvN <악마판사>의 강요한(지성), <빈센조>의 빈센조(송중기) 그리고 SBS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가 그들이다. 최근 드라마들은 어째서 이런 악을 자처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게 된 걸까.

<악마판사>의 강요한은 그 어린 시절부터 ‘악마 같은 본성’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자신을 왕따시키고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같은 반 아이들을, 빈부 격차에서 오는 의심을 부추겨 서로 불신하고 대립하게 만든 인물. 이 어린 시절의 일화는 그가 이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 국민시범재판을 통해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건 대중들의 지지를 밑바탕으로 해서 사법부마저 쥐고 흔드는 권력자들을 처절하게 응징하게 만드는 일일 테다. 그저 주먹으로 하는 일차원적인 복수가 아니라, 저들의 심리까지 이용해 벌이는 어찌 보면 사적 정의의 실현이다.

‘악은 디테일이 강하고 성실하다’ 했던가. 강요한의 주도면밀함은 부모 덕분에 마음껏 갑질을 일삼는 이영민(문동혁)을 조금씩 옭아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영민의 차에서 마약을 발견한 것처럼 꾸며 그 약점을 쥔 강요한은 그것을 진짜 ‘사냥감’을 잡기 위한 ‘미끼’로 쓰려한다. 그 진짜 ‘사냥감’은 놀랍게도 자신을 그 위치로 올려준 차경희(장영남) 법무부장관이다. 국민시범재판이라는 ‘법정 쇼’를 기획한 것이지만, 그를 제거하려는 강요한의 행보는 그것이 쇼가 아닌 진짜 재판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악마판사>의 강요한처럼 <빈센조>의 빈센조나 <모범택시>의 김도기는 모두 공적으로 작동하는 사법 시스템의 정의를 따라가지 않는다. 빈센조는 변호사지만 마피아식의 처절한 복수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나가고, 김도기 역시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정의를 믿지 않고 사적 복수를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해나간다.

이러한 악을 자처한 다크히어로들이 어째서 이렇게 계속 탄생하고 있는가는 그들의 카운터파트인 진짜 악당들의 면면을 보면 금세 수긍이 된다. 그 악당들은 겉으론 번지르르한 사회적 명사나 성공한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무수한 서민들의 피와 눈물이 드리워져 있다. 게다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들은 죄를 짓고도 오히려 법을 이용해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다크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실제로는 그저 범법자에 불과할 테지만 이들 정도는 되어야 저 진짜 악당들을 응징할 수 있으리라는 공감대가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법 정의의 실현은 최근 장르 드라마들이 가장 많이 다루는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에 늘 등장하는 건 ‘카르텔’이다. <빈센조>가 마피아식 응징을 하나의 풍자적 요소로 가져온 건 우리가 흔히 마피아를 붙여 조롱하곤 하던 카르텔화된 공적 조직들의 부패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악마판사>에서도 이른바 ‘사회적 책임재단’이라는 명목으로 뭉쳐진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들의 카르텔이 등장하는 건 같은 맥락이다.

정의를 구현해야할 사법 조직마저 오히려 단단한 카르텔로 엮여 부정을 자행하고 있다는 대중적 인식이 깔려 있고,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기득권을 챙기려는 공적 조직의 모습 앞에 대중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과 대적할 더 강력한 존재를 필요로 한다. 드라마라는 허구가 다크히어로라는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또 존재해서도 안 될 존재를 내세워 카타르시스를 만들게 된 사정은 여기서 기인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