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복수 대행에 열광하는 건 법 정의의 무력감 때문

[엔터미디어=정덕현] “유감스럽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그걸로 처벌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강하나 검사(이솜)의 한껏 풀죽은 그 말에 20년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철진(전석찬)은 격앙된 목소리를 토해냈다. “뭐라고요? 그 놈 때문에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고 다 잃었는데 아무 벌도 안 받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공소시효가 사람보다 중요해요? 무슨 법이 이따위야?”

금토드라마 <모범택시>가 마지막 에피소드로 가져온 사건은 뒤늦게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이었다. 당시 강압수사로 억울하게 범인이 되어 20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윤성여씨와, 경찰이 시신을 유기하고 은폐해 실종사건으로 만들었던 9차사건의 피해자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의 애끓는 사연이, 김철진이라는 인물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모범택시>는 이 사건을 무지개운수의 대표인 장성철(김의성)은 물론이고 김도기(이제훈)와도 연루된 사건으로 그렸다. 즉 장성철의 부모를 살해한 오철영(양동탁)이 김도기의 어머니를 살해한 진범이기도 했고 또 김철진이 누명을 썼던 강간 살해 사건의 진범이라는 이야기로 풀어낸 것. 이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오철영은 ‘무료해서’ 마치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을 자랑이라도 하듯 써서 장성철과 강하나에게 보냈고, 결국 그가 진범이라는 사실은 김도기와의 대질심문을 통해 드러났다.

어머니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오철영에게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김도기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이건 실제 피해자가 됐던 윤성여씨나 딸을 잃고 지금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김용복씨의 마음 그대로가 아닐까. 법은 어이없게도 잘못을 저지른 사법기관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죄를 묻지 않는 상황이었다. 과연 이걸 피해자들은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며 이제 더 이상 ‘사적 복수 대행’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던 장성철이나 김도기도 자신의 살인을 자랑하듯 떠벌리고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오철영 앞에서는 결심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복수를 대행해 왔던 김도기는 이제 자신을 위한 복수를 준비하게 됐다.

사실 ‘사적 복수 대행’이라는 설정은 정상적인 현실이라면 용납되기 어렵고 나아가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비정상적인 방식에 이토록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오히려 공감하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건 실제 피해자들의 애끓는 토로에 담겨 있듯이 법이 제대로 정의를 구현해주지 않는 현실의 무력감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엔딩 이후 ‘히든트랙’이라는 짧은 코너를 통해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당시 45세였던 김용복씨는 이제 70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공소시효가 때문에 딸의 죽음을 은폐했던 경찰이 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법정을 찾아가 판사님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왜 공소시효가 없는가. 경찰이 분명히 은폐해서 감춘 건데...”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역시 납득되지 않는 공소시효의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살인사건이나 경찰, 수사기관의 반인권적인 범죄의 공소시효는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아직까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사실 복수하고 싶어요.” 김용복씨의 이 말은 사법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어째서 ‘사적 복수 대행’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모범택시>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니 법보다 김도기의 주먹에 더 열광할밖에.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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