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는 법정물판 ‘모범택시’가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딘가 <모범택시>가 떠오른다. tvN 새 토일드라마 <악마판사>의 첫인상이다. <모범택시>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백현진이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의 대통령 허중세로 등장해 드라마 시작부터 광기어린 연설을 쏟아내는 장면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악마판사>가 <모범택시>의 법정드라마 버전처럼 보이는 건, 이 드라마가 현실을 어떻게 허구 속으로 끌고 와 사이다 판타지를 그려내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이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의 풍경은 사법 정의가 땅으로 떨어져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딘지 허중세 대통령이나 차경희(장영남) 법무부장관 그리고 정선아(김민정) 사회적 책임재단 상임이사 같은 인물들은 권력을 틀어쥐고 사법부를 쥐락펴락하는 이들로 보인다. 당연히 이 디스토피아의 국민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광화문 광장에 화염이 피어오르고 시위대들이 목청을 높이며,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 중에는 차량을 몰고 사법부를 향해 돌진해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 국가는 일종의 사법 라이브 법정 쇼를 기획한다. 적당한 잡범들을 잡아다 처결하는 걸 방송으로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끓어오르는 사법 정의에 대한 열망을 적당한 쇼로 눌러보겠다는 심산이다. 그 쇼에 등판한 시범재판부 재판장 강요한(지성)은 그래서 차경희가 믿고 심어놓은 인물이지만, 그의 행보가 이상하다. 첫 번째 재판으로 JU케미컬 회장 주일도(정재성)를 지목한 것부터가 그렇다. 독성폐수 유출로 한 마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인물은 과거 차경희의 검사시절 스폰서였기 때문이다.

마치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라이브 법정 쇼를 할 것처럼 보이던 강요한은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이 모두 바라보고 있다는 그 점을 이용해 이 법정을 통한 ‘사법 정의’를 구현해내려 한다. 판을 조금씩 바꿔 나가더니 결국 주일도 회장에게 금고 235년이라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놓은 것. 결국 국민의 환호가 이어지고 이렇게 생겨난 그에 대한 지지는 향후 이 라이브 법정 쇼에서 강요한이 자신을 좌지우지하려는 사회적 책임재단과 맞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을 예고했다.

<악마판사>는 저 <모범택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의 사법정의에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판결들을 드라마 속 허구로 가져와 일종의 ‘사이다 판결’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철저히 이것이 가상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내세운다. 그걸 전제해야 향후 이 라이브 법정 쇼로, 어딘가 현실에서 봤음직한 사건들을 마음껏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사이다 판결까지 다룰 수 있을 테고.

<악마판사>가 건드리는 건 그래서 사법정의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다. 그 갈증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사이다’로 풀어내 보겠다는 것. 물론 사법정의가 단순히 국민감정에 따른 사이다 판결 같은 단순한 선택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이 강요한이라는 인물은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방송쇼를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업고 마음껏 사법의 권력을 휘두르는 악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사이다 전개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딜레마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악마판사>는 <모범택시>를 닮았다.

전 판사이자 이제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문유석 작가는 아마도 본인이 판사로 일하면서 느꼈던 어떤 한계 같은 걸 드라마를 통해 풀어내고픈 욕망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보였던 진지한 고민들과 디테일들이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건 그것 때문이다. 하지만 <악마판사>는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과 상상이 덧대진 이야기다. 소재만이 아닌 작품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 회는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의 풍경이나 이른바 라이브 법정쇼, 시범재판부 같은 가상의 설정들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일 이 설정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후에는 이 법정쇼를 통한 사법정의에 대한 시원한 사이다 판결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이 가상을 그럴듯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연출, 대본, 연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 과연 <악마판사>는 <모범택시>가 될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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