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될 순 없어’가 익숙해 보이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TV는 중년 콘텐츠가 대세다. TV조선발 트로트가 요즘 워낙 뜨겁기도 하지만 그 이전부터 예능에서는 시트콤화된 중년 콘텐츠가 어느새 한 영역을 꿰차고 있었다. MBN <동치미>를 위시해 TV조선 <얼마예요>, <아내의 맛>, 채널A <아빠본색> 등 많은 종편 예능이 토크쇼에서 관찰예능까지 부부관계를 소재로 다루고 있고, 지난해 종영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KBS2의 살림꾼 <살림남2>, SBS<동상이몽2>, 나아가 SBS FiL <외식하는 날> 시리즈는 물론, 전통의 육아 예능부터 이혼을 정면으로 다루는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시리즈까지 부부와 가족을 소재로 삼는 중년 콘텐츠다.

JTBC도 이런 흐름에 뛰어들어 지난달 20일 새 예능 <1호가 될 순 없어>를 선보였다. 연예계의 많은 커플 중 개그맨 출신 부부는 이혼한 사례가 없음에 주목해 이혼 1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를 관찰하고 혹시나 누가 1호가 될 것인가를 농담하며 지켜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봉원과 결혼한 박미선과 출연자 중 유일한 싱글 장도연이 스튜디오MC 역할을 하고, 최양락·팽현숙, 박준형·김지혜, 강재준·이은형 커플이 리얼한 결혼 생활을 보여준다.

이혼이란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우지만, 실은 다채로운 부부 관계를 중심으로 웃음과 공감대를 찾고자 하는 가족 예능에 가깝다. 수십 억대 집에서 지지고 볶는 결혼생활기는 여타 부부 예능이 그렇듯 여유로운 연예인들의 살림살이를 엿보는 재미와 사람 사는 모습이 별다를 것 없다는 교감을 교차시킨다. 여기에 MC부터 출연진까지 모두 개그맨 출신이란 특성에 맞게 재밌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그 점이 특성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극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지만 개그맨 특유의 과잉된 에너지가 흐르는 스튜디오에는 과한 리액션이 넘치고, 생활상을 보여주는 부분은 캐릭터에 기반한 설정과 이벤트로 점철되어 있다.

비속어와 말싸움도 나오고 이른바 망가지는 모습도 나오다보니 진짜 부부의 리얼함이 특색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들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는 위안이나 리얼함보다는 개그맨들이라니 기대되는 웃음과 일상적이지 않는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물론 가장 많은 화제가 된 최양락과 팽현숙의 관계는 우리네 중년 이상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집안 풍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 밖에서도 일하고 돌아와서도 일이 끊이질 않는 아내 팽현숙, 일 안 하고 잔소리와 타박하기나 하는 남편 최양락, 그러다 폭발한 아내가 남편에게 거한 욕과 윽박을 내지르는 콤비네이션은 <개콘>의 한 코너처럼 짜여 있는 틀 속에서 상황만 변주되는 콩트 같다. 한두 번이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웃음이 날 수 있겠지만 반복될수록 웃음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그런데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관찰예능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합을 살릴 수 있는 패턴플레이를 만들어서 그에 맞게 스토리텔링하는 꽁트 형식이다. 웃음은 늘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하다 도리어 혼나는 최양락과, 맞춰 사는 가장 박준형의 신세, 벗고 사는 식탐 비만남 강재준의 일탈에서 나온다. 연기에 도전하는 최양락이 집에 배우 조재윤을 초대했을 때도, 박준형·김지혜 부부가 가족사진 촬영을 하며 <개콘>의 추억을 곱씹을 때도, 집안 구석구석에 정크푸드를 숨겨놓고 아내 몰래 먹는 강재준의 에피소드에도 지난주, 또 그 지난주 봤던 것과 마찬가지의 코드로 웃음을 선사한다.

중년 콘텐츠가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를 평가 절하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문제는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중년 콘텐츠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들이 집중하는 소재와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 도식적이고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일례로 최근 성 역할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논란이 뜨겁지만, 중년 콘텐츠들은 여전히 며느리와 시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같은 고착화된 관계 안에서만 웃음을 만들길 반복한다. 더 나아간들 이혼 등 자극적 소재에 의존한다.

실제로 <1호가 될 순 없어>의 웃음 요소와 캐스팅은 이미 다른 중년 콘텐츠에서 살짝은 맛본 것들이다. 최양락과 팽현숙 부부의 모습은 <살림남>에서, 박준형과 김지혜는 <외식하는 날1>, <동치미>에서, 강재준과 이은형 부부는 SBS <자기야 백년손님>, MBC <마리텔>, 그리고 SNS를 통해 어필하고 있는 웃음이다. 도식화된, 익숙한 웃음이 가진 한계는 이들 부부의 세계로 많은 시청자들을 인도하기에 장벽이 되고 몰입의 어려움이 된다.

이런 점이 중년 예능이 한 시대의 예능으로 평가받을 만한 콘텐츠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소비되는 자전거래 형태로 남는 이유다. 오늘날 예능이 대중문화의 핵심 장르로 떠오른 데는 시대정신, 일상의 호흡과 친숙함이란 정서적 교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의 대체제로만 가능성을 보이는 익숙한 자극만 탐하는 중년 예능 콘텐츠들이 아쉽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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