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코미디가 지속돼야 할 당위성은 어디에 있는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공개코미디는 왜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일까? KBS의 새 공개코미디 쇼 <개승자>를 보면서 갖게 된 다소 불편한 의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무대에 올랐던 수많은 코미디언들, 꿈을 키우는 지망생들, 2000년대 찬란했던 웃음을 추억으로 삼는 대중들의 존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이미 10년 전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가 도래한 후 사실상 시효가 끝난 장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상 지상파 3사 공채 코미디언 올스타이자, 수위 면에서 기존 지상파 공개코미디 쇼보다 제약이 훨씬 덜하다는 tvN <코미디빅리그>조차 늘 1%대의 시청률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성기에도 공개코미디 쇼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예능선수를 배출하는 ‘팜’이었다. 이 또한 관찰 예능의 길고 긴 시대를 지나며 완전히 사라진 필요다. 그럼에도 관성의 힘이랄까, 한결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KBS <개그콘서트>는 기록적으로 버텼다. 꿈의 무대, 절실함, 과거의 영광 등의 스토리텔링을 반복하며 공개코미디 부활을 노리는 작은 시도들은 계속 되어왔다.

역사는 돌고 돈다. 방청객을 앞에 두고 ‘에너지’로 승부하는 공개코미디 쇼 또한 한때 ‘국민 예능’ 양식이었다 식상해진 쇼버라이어티, 꽁트 코미디를 밀어내고 혜성처럼 등장한 신선한 볼거리였다. 지상파 3사 모두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대학로에도 개그 소극장 붐이 일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이미 리얼리티와 일상성이 예능의 화두가 되고 재미의 관점이 다양해졌다. 그러면서 에너지로 분위기를 이끌고 패턴과 공식의 반복으로 1차원적인 웃음을 추구하는 공개코미디는 크게 위축됐다.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은 방송국이 엔터산업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던 시절 만들어진 공채 기수 문화를 끝까지 이어오던 피에로의 눈물과 꿈이다.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의 <개승자>는 KBS가 <개그콘서트> 폐지 후 약 1년 반 만에 내놓은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했다. 13개 팀이 매 라운드 시청자 개그 판정단의 투표를 통해 라운드 진출 및 최종 우승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서바이벌 전문MC인 김성주의 진행 하에 매주 탈락 팀이 발생하고, 최종 우승팀에게는 1억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서바이벌 쇼이기에 팀원 모집 및 회의 과정, 각오를 담은 인터뷰 등 출연자들의 노력과 간절함을 비춰준다. 아쉬움, 절실함, 찬란한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스토리가 무대 위 코미디와 결합한다는 점이 <개그콘서트>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차이는 여기까지다.

제목은 ‘개승자’지만 계속 ‘계승자’로 자꾸 인식하게 된다. 익숙한 개그 코드와 캐릭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첫 회는 절반 이상 화려했던 <개콘>의 회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시 코미디언들의 어려움, 무대가 사라진 허탈함, 후배들과 한국의 개그를 위한 사명, 소명, 그리움, 반가움, 절실한 눈물이 또 한 번 반복된다.

개그코드 또한 기존 코너와 인기 콘텐츠 패러디, 캐릭터를 계승한다. 이승윤 팀은 차력 개그를, 유민상 팀은 먹는 이야기를, 김준호 팀은 분장 코미디를 펼친다. 예의 그 코미디들이다.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반가움 이외에 <개콘>과 달라진 점은 찾기 어렵다. 1년 반이 지났지만 <개콘>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까닭에 대한 이해 또한 딱 폐지 시점에 머물러 있다. 지난 14일 <유튜브 채널 개승자>에서는 방송에서 담지 않았던 연기자 입장에서 심의와 소재의 제약이 갖는 어려움을 보다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옛날에 박준형이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했다. 지금은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 “방통위라도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겠다” 등 소신을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오해나 깐깐한 방통위가 아니다. <개콘> 전성시절에 없던 유튜브라는 새로운 세계가 일상에 자리 잡은 것처럼 세상이 바뀐 거다.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행오버>시리즈의 토드 필립스는 코미디 영화가 아닌 <조커>를 만든 이유를 20여 년간 자신이 해온 코미디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웃음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높은 수위로 유명한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또한 변화한 세상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개승자>는 여러모로 <슬램덩크>, <농구대잔치>, <마지막 승부>라는 1990년대 레파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구 예능을 보는 것 같다. 매번 <개콘>이라는 과거의 영광에서 시작한다. 형식 자체가 가장 큰 한계인데, 그 형식에 대한 고민은 아예 건너뛰고 변화와 새로움을 논한다. 그러니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로 들어서면서 공개 코미디의 웃음과 대중이 생각하는 재미의 격차는 커졌다면, 욕설과 비속어, 소재의 금기가 방송과 비교할 수 없는 유튜브가 등장하면서는 판이 아예 달라졌다.

공개코미디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면 어렵게 폐지한 <개콘>과 확실한 결별을 해야 한다. 에너지로 승부를 보고, 1차원적인 합으로 웃음을 만드는 코미디 문법에 대한 고민 이전에 공개코미디에 대한 맹목적인 순정과 2020년대에 가장 적합한 코미디 플랫폼과 형식에 대해서부터 유연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플랫폼, 콘텐츠 경쟁과 변화가 치열하다 못해 날마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는 지금, 코미디 무대는 물론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뿌리이긴 하나 2000년대 대학로와는 다른 2020년대의 다음 버전이 필요하다.

더 이상 화려한 과거에 대한 향수와 의미부여로 관심을 만들기는 이제 어렵다. 심의나 소재가 문제가 아니다. 분장을 비롯한 외모와 에너지로 승부를 보는 코미디는 이제 어렵다. 아무리 새 얼굴이 등장해도 기존 공개코미디 코드를 계승해서는 새로운 볼거리로 만들기는 어렵다. 끌어주는 기수 문화, 절박함을 내세우는 당위는 코미디를 가볍게 즐기는 데 어려움만 만든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이미 코미디언들은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코미디를 잘 펼쳐내고 있다. 예를 들어 <피식대학교>, <빵송국>을 위시해 코미디언들은 이미 자신들의 창의력, 끼, 연기력, 연출력을 충분히 발휘할 무대를 찾아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단지 명함에서 방송국만 빠졌을 뿐이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기존 노하우와 경험이 지닌 가치가 옅어지고 있다.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서바이벌 형식을 가미했다고 <개콘>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개승자>는 아쉽게도 <개콘>을 계승하는 길을 택하며, 공개코미디 쇼가 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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