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승자’ 유튜브 버전, KBS는 왜 이 재밌는 걸 편집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저희에게 조금만 자유를 주시면... 나미가 지금은 너무 예쁘지만 못생긴 역할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럼 오나미씨한테 못생겼다고 직설적으로 1차원적인 개그를 해야 되는데 그 1차원적인 개그를 하면 난리가 나요 저쪽에서. 여성분들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싸우지 좀 말아요 제발. 남자, 여자 왜 이렇게 싸우는 거야. 아니 오나미씨가 못생긴 역할일 때는 “못생겼어!” 하면서 웃길 수도 있는 거고 유민상씨가 뚱땡이 할 때는 “뚱땡이!”하고 약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1차원적인 게 가장 웃긴데 1차원적인 걸 막아버리니까 2차원적인 걸로 못가는 거죠. 뭔가 다 들켜버리니까 내놓을 패가 없다는 것도 저는 솔직히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KBS <개승자>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온 ‘김준호, 변기수 방송불가 영상’에서 변기수는 현 개그의 위기의 원인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외모 비하 개그 같은 1차원적 개그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개그의 위축을 낳았다는 것. 김원효도 조심스럽게 “제약이 너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그래서 “조심스러워지고 위축되고 예전만큼 못 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코미디 비상 대책 위원회’라는 소타이틀을 걸고 현재 개그의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물었던 김성주는, 두 사람을 콕 집어 “방송 심의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거침없이 발언을 하던 변기수는 짐짓 위축되는 모습으로 “그렇게 얘기하며는...”하고 얼버무리다가 작정이라도 한 듯 “아이.. 얘기 해야겠다. 그냥 아저씨한테..”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을 뭐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 ‘아저씨’라고 한 대목에 자막이 물음표를 달아 웃음의 코드로 만든 후 변기수는 속시원히 할말을 털어놨다. “심의위원님들 죄송한데 개그 좀 어느 정도까지는 풀어주시고 할 수 있게 해줘야죠. 나는 또 못나오겠네. 젠장.”

사실 변기수의 이런 발언은 <개승자> 제작진들도 스스로 위험하다 여겼을 정도로 논란의 소지를 가진 게 사실이다. ‘외모 비하 개그’의 문제는 시청자들이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외모를 비하해가며 웃기는 것에 담긴 가학성에 불편함을 느껴서 생긴 일이지, 전적으로 과도한 심의 때문에 생겼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이런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에 의해 심의가 나오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결국 개그맨들이 대중들의 달라진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웃음 코드에 머물러 있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에 맞는 웃음의 코드를 개발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진짜 ‘개그의 위기’를 불러온 이유다.

하지만 <개승자>에 나온 개그맨들 대부분은 여전히 이 문제를 심의 탓이나 ‘프로불편러’들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김준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도 찾아가 1인 피켓시위라도 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 생각들이 드러난다. “KBS가 더 빡빡해요. 옛날에 형(박준형)이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계속 얘기했잖아요. 지금은 개그를 다 비하로 봐요. 우린 비하할 의도가 없는데. 그러니까 이거는 방송통신위원회 찾아가서 정중하게 얘기를 하던지 그게 안되면 1인 피켓시위라도 하겠다...”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며 본인들은 “비하할 의도가 없다”고 말하는 김준호는 방송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수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걸 다소 간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김준호나 변기수, 김원효 같은 개그맨들이 과거와는 달라진 분위기 때문에 표현과 소재에 있어 제약을 받는다는 것과, 그래서 웃기는 게 쉽지 않다는 토로는 진심일 게다. 그건 물론 수용자인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승자> 본방에서 편집되어 유튜브에 공개된 ‘방송불가 영상’은 그 안에 담겨진 ‘위험천만한 개그맨들의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재미는 물론이고 의미도 적지 않은 영상이었다. 단 10분짜리 영상이지만 거의 100분 간 방영됐던 <개승자> 본편보다도 더 재밌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개그맨들의 발언들이 담겼지만 그럼에도 이 영상이 좋은 반응을 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이 영상 자체가 하나의 블랙코미디로 읽히기 때문이다. ‘코미디 비상 대책 위원회’라는 소제목은 과거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였던 ‘비상 대책 위원회’에서 가져온 것처럼 이 영상을 하나의 코너로 인식되게 만들었고, 개그맨들이 쏟아내는 토로는 물론 진심이 담긴 것이었겠지만 감수성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그맨들의 변명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처럼 연출되었다. 그래서 과감한(어떤 의미에선 위험한) 발언들을 쏟아내면서도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개그맨들이 질타의 대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삼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비판과 풍자의 목소리를 낸 지점은 오히려 지금의 감수성에 맞는 개그를 이 과정에서 찾아낸 것처럼 보였다. 약자를 향한 비하가 가학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강자를 향한 비판은 하나의 풍자나 블랙코미디가 된다는 걸 변기수와 김준호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의견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체를 쉬쉬하거나 편집해 버릴 게 아니라, 이 시대의 감수성에 맞는 새로운 개그를 찾아나가는 과정으로서 본편에 녹여냈다면 어땠을까 싶다. 놀랍게도 개그맨들은 김성주가 제안해 마련된 이 자리에서 진지하게 의견을 내면서도 그것 자체를 개그 코너처럼 만들어내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갑자기 “코미디의 위기는 자연의 이치”라며 때론 사라지기도 하지만 트로트 붐처럼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고 ‘자연인’ 이승윤의 엉뚱한 발언에 박준형이 “트로트가 다시 살아난 계기라면 김성주?”라고 운을 띄운 대목이 그렇다. 박준영은 이어서 “코미디가 다시 살아난 계기가?”라고 재차 물었고 개그맨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성주?”라고 외쳤으며, “잘못 된다면 그 모든 탓은?” “김성주!?”라고 맞춘 듯 외쳐 웃음을 줬다.

시대에 맞지 않는 개그는 시청자들을 웃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논의조차 피할 필요는 없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같은 이야기도 어떤 틀에 어떤 연출을 통해 담아내느냐에 따라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코미디 비상 대책 위원회’는 개그맨들이 1차원적인 개그만이 아닌 그 이상의 개그도 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보여줬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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