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승자’, 이 냉혹한 서바이벌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KBS <개승자>에서 두 번째 탈락팀으로 김대희팀이 결정됐다. 두 번째 라운드로 벌어진 조별 미션의 네 팀이 맞붙은 A조 대결에서 최종 탈락하게 된 것. 이날 A조에는 이수근팀의 ‘아닌 거 같은데’, 김민경팀의 ‘살기로운 의사생활’, 김대희팀의 ‘갱스토랑’ 그리고 지난 첫 번째 미션에서 가장 많은 득표수로 1위를 차지한 이승윤팀의 ‘신비한 알고리즘의 세계’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수근팀의 ‘아닌 거 같은데’는 첫 번째 라운드에서 선보였던 것처럼 이수근이 반복적으로 부르는 “아닌 거 같은데-”라는 중독성 강한 노래에 맞춰 여러 상황들을 보여주며 웃음을 만들었다. 윤성호의 민머리를 활용한 몸 개그나 “당근 있냐”는 질문에 “수근인데요”라며 하는 말놀이 개그, 게다가 정성호 특유의 성대모사 개그 등등이 더해진 무대는 사실 생각보다 임팩트가 있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봤던 개그들을 “아닌 거 같은데-”라는 음악의 반복으로 묶어 놓은 듯한 인상이 강했던 것.

그래서 이수근도 자신들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을 보였다. 이어진 김민경팀의 ‘살기로운 의사생활’과의 1대1 대결에서 자신들이 ‘58:41’로 이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아닌 거 같은데-”라고 개그로 받아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수근팀이 김민경팀을 이긴 데는 자신들이 잘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김민경팀의 무대가 너무 지금 시대적 코드와 감수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뚱개그’로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민경팀은 이전 라운드에서 유민상팀이 떨어지면서 자신들이 ‘뚱개그’를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꾸민 ‘살기로운 의사생활’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뚱뚱이 버전으로 바꾼 것이었다. 먹는 것만 밝히는 의사들의 모습과, 심지어 고기를 입에 넣어주거나 언급만 해줘도 심폐소생이 된다는 설정으로 주는 웃음. 생각보다 관객들은 이런 웃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민경팀을 소생시킨 건 다음 무대에 오른 김대희팀이었다. 이들이 갖고 나온 ‘갱스토랑’은 전형적인 ‘조폭 서열 개그’로 메뉴명을 못 알아듣는 무식함을 내세운 코미디. “모히토”를 시키자 “다이또”라고 말하고 “어니언링”에 “어떤 언니를 찾으시냐”는 식의 아재개그는 어디서 웃어야 될지 어색함만 가득했고, “바질” 올려달라는 말에 정말 바지를 벗어 올려주고, “스테이크”를 달라는 말에 박성호가 분장을 한 채 나와 ‘숙대입구’ 안내방송을 하는 장면은 너무 과해 웃음보다는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결국 결과는 ‘73:26’으로 김대희팀의 참패였다.

A조 마지막팀은 기대주였던 이승윤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소재로 가져와 검색어에 따른 엉뚱한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는 것으로 큰 웃음을 줬던 ‘신비한 알고리즘의 세계’를 재구성해 가져왔다. 역시 아이디어가 넘쳤고 관객들의 반응도 쏟아졌다. 우스꽝스러운 에어로빅 댄스나 ‘똥 밟았네’ 댄스 등으로 쌍둥이 이상민, 이상호가 선보인 춤을 활용한 개그,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심문규가 악동뮤지션 찬혁을 흉내 낸 무대도 빵빵 터졌다. 무엇보다 트렌디한 유튜브 영상 패러디와 알고리즘이라는 소재가 시의적절한 웃음을 만들었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15:84’로 이승윤팀의 압승. 결국 이로써 김대희팀은 탈락하게 됐다.

사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가져와 대결을 벌인 후 탈락팀을 만들어내는 상황은 잔인한 면이 있다. <개그콘서트> 폐지 이후 그토록 꿈꿔왔던 개그 무대에 다시 오른 이들이 아닌가. 그러니 서바이벌 초반 탈락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첫 라운드에 탈락한 유민상이나 두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탈락자가 된 김대희나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대선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탈락의 씁쓸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승자>의 서바이벌이 냉혹하다 해도 이 결과들을 통해 개그맨들이 봐야하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지금의 관객들이 어떤 웃음을 원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작과 더불어 개그맨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 이유로 심의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들었지만, 실상은 지금의 관객들이 원하는 웃음을 찾아내지 못한데 있다는 걸 서바이벌의 결과들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민상팀의 탈락은 여전한 ‘외모개그’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이제는 별로 없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고, 김대희팀의 탈락 역시 조폭 서열 개그나 과한 몸 개그가 웃음보다는 불편함만 줄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반대로 신인팀이 첫 번째 라운드에서 선보인 모니터를 활용해 미리 찍어둔 영상을 무대와 연결시킨 참신함이나, 이승윤팀의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지금의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소재를 가져온 무대들이 좋은 반응을 얻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서바이벌은 그저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무엇에 더 반응하고 호응하는가를 찾아내고 이를 자신들의 무대에 적용해 이 시대에 맞는 웃음을 개발해내는 것. 그것이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가진 진짜 효용성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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