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선택한 ‘개승자’, 신인 스타 발굴이 관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과연 KBS <개승자>는 코미디의 계승자가 될 수 있을까. 지난해 6월 <개그콘서트>가 종영하면서 지상파 코미디는 그 명맥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개그맨들의 절실한 소망은 약 1년 반 만에 <개승자>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 시청자 참여로 만들어진 <개승자>라는 제목은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을 줄인 말로서 ‘개그의 승자’, ‘개그의 계승자’ 같은 의미가 담겼다.

뭐가 달라졌을까. 코미디 서바이벌이다. 최근 채널A <강철부대>,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예능의 새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서바이벌 장르를 코미디와 접목시켰다. 그래서 총 13팀이 1억 원의 우승 상금을 놓고 대결을 벌인다. 매 미션마다 한 팀씩 탈락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팀이 우승이다. <개승자>는 서바이벌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서바이벌과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의 대명사격인 된 김성주를 진행자로 내세웠다.

사실 서바이벌의 경쟁 구조는 <개그콘서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도 PD 앞에서 경쟁하고 또 관객 앞에서 경쟁함으로써 최종 살아남은 코너만 방영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승자>가 다른 건 서바이벌 형식을 가져옴으로써 그 경쟁 과정까지 담아내고, 심지어 다른 팀이 무대에서 코너를 할 때 이를 보는 경쟁자들의 리액션까지 덧붙여지게 됐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그저 코너 안에서만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던 개그맨들이 무대 바깥에서도 각각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본 대결을 시작하기 전 팀장들의 사전 미팅 자리는 개그맨들 특유의 치고받는 왁자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동시에 후배 개그맨들인 홍현호와 김원훈, 박진호, 황정혜, 정진하가 한 팀을 이뤄 나왔을 때는 김민경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뭉클하고 먹먹한 광경들도 엿보였다.

각오를 묻는 질문에 홍현호는 “선배들과 경쟁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다”며 “마지막 무대라 생각한다”는 말을 꺼낼 때는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수근팀에서 아이디어를 줄줄이 얘기한 팀원 유남석 역시 자신이 짠 코너들이 “자식”이라며 이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광경들은 그간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또 개그맨들에게서도 거의 가려져 있던 장면들이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가져오면서 무대 바깥에서 보여주는 개그맨들의 여러 감정들과 생각들은 이들이 만든 코너에 진정성을 담아준다는 점에서 <개그콘서트>와는 다른 감흥을 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첫 서바이벌 미션 무대에서 이런 개그맨들의 절실함이 담겨진 코너들은 어땠을까. 박성광팀이 선보인 코너 ‘개승자 청문회’는 박성광, 김회경, 이상훈, 양선일 그리고 와일드카드로 남호연이 출연해 그간 이들 개그맨들이 해왔던 개그들을 평가하는 청문회 방식의 개그였다. 썰렁함을 오히려 웃음의 포인트로 뒤집어 “무안! 전남 무안-”이라는 유행어를 반복하는 박성광과 ‘니글니글’을 재연한 이상훈, 그리고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은 양선일에게 그게 뭐가 웃기냐며 질타하는 남호연의 합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이고 애드립이 강한 코너.

반면 이들과 대결한 이수근, 김민수, 윤성호, 정성호, 유남석 그리고 고유리가 와일드카드로 참여한 이수근팀은 특유의 음악개그를 가져와 여러 상황들을 만든 후 “아닌 거 같은데-”를 반복하는 중독성 있는 코너를 선보였다. 윤성호와 합을 맞춘 <오징어 게임> 패러디와 허성태 성대모사를 실감나게 선보이며 반전 개그를 선보인 정성호, 여기에 꿈에 나올 법한 중독성을 가진 “나는 너고 너는 나다”를 관객들까지 따라하게 만든 유남석까지 더해져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서바이벌이기 때문인지 웃음의 강도가 높은 코너들이 나왔고 특히 99인의 판정단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라 그 리액션이 주는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각 팀의 분위기들이 스케치되어 먼저 보임으로써 코너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졌다. 곧바로 판정단 투표가 이뤄지고 김성주 특유의 서바이벌 진행도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첫 대결의 승자는 이수근팀. 1라운드로 제시된 ‘개그 판정 존 탈출 미션’의 룰에 따라 패자팀인 박성광팀은 판정 존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머지 무대들이 진행될 때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된다면 불안감과 더불어 굴욕감도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개승자>의 형식적인 틀은 분명 <개그콘서트>에서 진일보한 면이 엿보인다. 무대에서 선보인 코너들도 과거 <개그콘서트>의 매주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던 느슨함과는 달리 각이 세워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등장할 팀들의 코너들도 궁금해졌다. 어떤 색깔의 개그들이 소개될 것이며, 과연 그 대결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우려는 <개승자>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새로운 스타 개그맨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팀장들이 우선적으로 보이는 구성에 따라 이미 스타들인 개그맨들이 전면에 나와 있는 게 <개승자>의 현실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팀장들은 오히려 새로운 얼굴들을 전면에 세워주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성패는 새 얼굴이 스타로 등극하는 그 지점에서 갈리기 마련이다. <개승자>라는 제목처럼 코미디를 이끌어날 새로운 계승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프로그램도 성공할 수 있을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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