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유재석을 중심으로 여성 예능을 구현하는 흥미로운 방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놀면 뭐하니?>는 예능 콘텐츠의 주요 평가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시청률, 화제성, 트렌드 선도 측면에서 현재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유산슬 프로젝트 이후 <놀면 뭐하니?>의 시청률 그래프는 동학개미운동 이후 주식 시장의 지표와 비슷하다. 트로트붐에 올라타 성공가도를 달리더니, 이효리, 비와 함께한 싹쓸이로 유튜브 감성과 놀이 문화에 1990년대 무드를 접목시키며 한층 더 고도를 높였다. 그리고 바로 쉴 틈 없이 시작된 환불원정대는 예능 역사상 처음으로 대세로 떠오른 여성 예능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을 얹었다.

유산슬 시절부터 <놀면 뭐하니?>는 노골적으로 자막을 통해 부캐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면서 오리지널리티를 공증했다. ‘음악의 신이나 ‘UV’ 등 이전에도 있었던 가면극, 캐릭터플레이를 굳이 부캐라는 새로운 개념어로 만들고 유통하려는 노력이 당시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늘 한발 앞서가는 이들이 부캐라는 개념 확립에 공을 들인 것은 지상파식 시즌제를 펼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한 전초작업인 셈이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깔고, 여러 시도를 통해 도출된 음악 예능이란 특기와 트렌드의 접목을 파이프라인으로 삼아 벌써 세 번째 연타석 홈런을 쳐냈다. 성공의 경험이란 측면에서 금요일 밤에 편성 블록을 갖고 있는 나영석 사단의 영광이 떠오르고, 트렌드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현재 한국어 유튜브 콘텐츠 중 가장 핫한 <가짜사나이>에 대한 언급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환불원정대의 키포인트는 여성 주도 예능이다. 돌아온 엄정화에 유재석의 오랜 파트너 이효리, 새 예능 파트너로 활약 중인 제시, 그리고 MBC <나 혼자 산다>의 주역 화사가 주인공이다. 나열된 이름에서 전해지듯 센 언니 캐릭터인데 이는 해석하자면 주체적이고, 개성이 강하며, 멋있고 자존감 높은 여성상을 아우른다. 이들은 여자니까 해야 하거나 피해야 하는 건 당당히 직접 거론하거나 거른다. <나 혼자 산다>여은파처럼 외모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핵심은 기존 남성 출연자 위주의 예능 틀에 맞추기 위해 캐릭터를 잡거나, 털털한 반전 매력 보여주기 등의 정형화된 패턴을 벗어던지고, 여자들끼리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는 데 있다. 이들은 분명 유재석이 주도하는 판에 들어왔으나 각자의 개성을 오히려 강하게 드러내고 목소리 크기도 두 명의 남자 매니저와 달리 각각 유재석과 동등하다.

흥미로운 건 분명 유재석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에서 여성 예능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제작자를 맡은 유재석 및 제작사와 기싸움을 벌이는 구도를 마련해 전선을 설정한 다음 제작자와 아티스트들이 늘 함께하지 않고 두 집단을 떨어뜨려 일정 부분 따로 진행한다. 유재석은 제작자 지미 유로 분해 소속 아티스트들을 위한 매니저 인터뷰, 작곡가 섭외, 역술가 만남 등 자신의 일을 홀로 펼치는 분량이 꽤 많다. 게다가 기존 유재석 사단과는 거리가 있는 김종민과 정재형을 매니저로 품으면서 지미 유 쪽의 웃음 코드도 익숙지 않아 옅다.

반면 환불원정대 멤버들의 색은 기대 그대로 짙고도 짙다. 제시와 이효리, 화사에게 기대되는 캐릭터가 십분 발휘한다. 그런 이들이 모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여자들끼리니까 가능한 코드가 매력적이다. 엄정화의 집에 모여서 늦은 저녁을 함께하며 가슴 언급을 비롯한 외모, 스킨십, 남자 관련 토크를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펼친다. 만약 남자들끼리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남녀가 모여서 하면 종편이나 어디 마이너한 케이블채널의 19금 방송이 될 것이다. 유재석이 만약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분명 질색하거나 피곤해하면서 만류하거나 정리하는 정형화된 웃음 공식을 따르게 될 터이다. 그런데 붙는 장면을 줄이고 따로 떨어뜨리면서 여성 주도 예능의 정체성은 더욱 도드라지고, 그에 따른 새로운 웃음코드를 전개한다.

트로트, 유튜브와 90년대, 여성예능을 콘텐츠화해 연이어 성공한 <놀면 뭐하니?>는 확성기와 같다. 트렌드 자체를 창조하는 건 아니지만 방송의 힘을 활용해 증폭하는 데 최고 전문가다.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여성 예능의 특징은, 여자 출연자들끼리 기존 예능 공식을 소화하거나 KBS <청춘불패>처럼 메인 MC를 남자로 둔 채 진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보다 현실적이고 솔직하며, 재밌으려 노력하는 대신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환불원정대도 분명 유재석의 예능이고 그가 중심이지만 여성 예능의 트렌드를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잘 이해하고 주어진 재료와 상황에 접목하면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여자 예능은 안 된다는 방송가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통설이 뒤집히는 중이다.

이처럼 <놀면 뭐하니?>는 다른 트렌드를 가져와(음악 예능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성공 그 다음 더 큰 성공, 그다음 더 큰 성공과 기대를 연달아 모아가며 매번 자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침체된 지상파 예능의 한계와 조건을 넘어서며 운신의 폭을 넓히고,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전신인 <무한도전>도 극복하지 못한 성장스토리 이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스스로 찾아낸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